<틱, 틱...붐!> 넷플릭스 영화
브런치에 미술학원 창업에 대한 브런치 북을 응모했는데, 별 소식 없이 발표난 거 보니, 떨어진 것 같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는 마음으로 보낸 터라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 한 번 받고 말았다.
역시 인생은 실전이다. 브런치 친구 중에 응모했던 친구도 떨어진 것 같다. 그 친구는 될 줄 알았는데 떨어졌다. 그리고 반 년 동안 매달렸던 그림책 출판은 안 됐다. 한 출판사 편집장님으로부터 주인공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횟수를 줄이고 여자아이가 만들어 낸 캐릭터들에게 갈등구조를 만들어서 수정해 보면 어떻냐는 얘기를 들었고, 수정되면, 다시 연락해 달라는 피드백을 얻었다. 작업이 키쉬하고 그래픽적인 요소가 마음에 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뭐, 책이 출판된 건 아니지만,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같이 그림책 작업을 한 동기들도 피드백을 받았는데, 요즘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만 얻고, 21년 공모전의 추억은 이렇게 끝났다. 지금은 좀 설렁 설렁 작업을하며, 내년 6월말에 있는 공모전을 노려보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틱, 틱 붐'도 한 창작자의 이야기다. 곧 있으면, 30살이 되는 존은 조급하다. 28살에 데뷔한 뮤지컬계의 거성 스티븐 손드하임과 비교하며, 자기 비난을 웃는 얼굴로 열심히 하는 존 이다. 지난 8년동안, 작품 하나만 계속해서 수정했던 존은 드디어 뉴욕 브로드웨이로 가는 리허설을 잡는다. 리허설이 하루도 안 남은 시점까지, 존은 이 에피소드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여주인공의 솔로 무대곡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다.
하이라이트곡을 만들어야 된다는 디렉터의 조언을 무시할까도 생각하지만, 예전 워크샵에서, 뮤지컬계의 전설적인감독 스티븐 손드하임이 말하길, 존의 작품엔 꼭 여주인공의 솔로 무대가 필요하다는 말이 상기된다. 안간힘을 쓰며 작곡하지만 도저히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댄서인 존의 여자친구는 한 무용센터에 강사로 초빙받고 존과 같이 뉴욕을 떠나 이사가기를 희망하고, 항상 자신의 월세를 커버해주던 친구는 이사를 가버려서, 집안의 수도와 전기가 끊긴다. 생업을 위해 일하는 다이닝 식당에선 손님들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지끈 거린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지속하기엔, 서른이 가까워오고, 자신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다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 존은 여주인공의 솔로곡을 완성하고 리허설을 성황리에 마치지만, 사람들은 존에게 투자하기를 꺼려한다. 기존에 보지 못한 독창적인 작업인데다가, 대중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작가와 업계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순 있어도, 과연,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었다. 존은 그렇게 가장 두려워하던 30이 되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친한 친구는 AIDS에 걸린다. 8년동안 동거동락했던, 작업을 정리하고,
존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한결, 초연한 자세로 묵묵히.
5년 뒤, 존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작업을 완성하고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 기존의 뮤지컬 형식을 뒤엎는 작업으로 현대에 와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반전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그림책 전시를 하면서 그림책 관계자들을 만나게 됐다. 편집장분들, 작가분들 그리고 랜덤 관람객분들. 어떤 관람자 분은 동기의 그림책을 보고 울기도 하시고, 사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넷 모두 칭찬만 듣고 출간은 안 됐다. 그림책 교육 기관 선생님도 이 사람은 출간 될 거예요 라고 대놓고 말했던 분도 아쉽게 출간이 안 됐다. 나는 기존 그림책과 좀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반응이 없을 줄 알았는데, 칭찬도 듣고 피드백도 받아서 감지덕지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세 분 전부 출간 준비 중이시다.)
피드백을 들으면서, 내가 무엇을 놓쳤고, 내가 당장 시장에 들어가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되는지 생각을 하게 됐다. 존도 리허설이 끝나고, 존의 에이전시에게 독특한 세계관을 피력하기 보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새로운 작업을 써보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8년동안 한 작업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던 존인데,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 작업을 위해 바닥에 브레인 스토밍 카드를 하나씩 놓아두는 존의 모습에서 하...한숨 섞인 공감의 탄성이 나왔다.
몇일전에 그림책 기관에서 만난 동기 두명과 줌으로 모임을 가졌다. 1월 5일에 새 책 기획 아이디어를 갖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줌에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니까, 한 동기가 괴기영화같다고 소름끼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예술가에겐 무서운 영화가 따로없다. 심지어, 그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하나 하나가 실제 예술가들이 쓰는 말들이어서 소름도 끼친다.
내 책장에는 내가 쓰지 않은 책들과 악보가 많다는 존의 노래가 나오는데, 등이 서늘해졌다.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도 무서운 영화였는데, 이 영화만큼 무서운 건 없는 것 같다. 그림책이든, 뮤지컬이든, 영화계든 맥락은 비슷한 것 같다. '라라랜드'나 '위플래쉬'는 허구의 영화지만 실화에 가깝다. 자기 음악을 하고싶은데 캐롤피아노나 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엽게 여기는 예술가도, 예술 진로를 존중해 주지 않는 가족, 운없으면 만나는 예술 꿈나무들의 자존감 테러리스트 선생님, 존이나 라라랜드의 여주인공처럼, 카페알바를 하며, 음악감독 또는 영화배우가 되려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주문할 때 서른 초중반 정도 되는 분들을 보면 예술가인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수많은 팔로워가 있지만, 정작 책을 구입해 주는 골수 팬층이 없는 작가분도 계시고, 출판사에서 제의를 해도 거절하는 작가분도 계시고, 출판사가 꼭 아니더라도 독립출판으로 작은 서점에 입고하시는 분도 계시기도 하고, 출판이란 이름 뒤에 다양한 면들이 있다.
미술 학원강사를 접고 이직준비를 하고 있다. 미술과는 관련이 없는 분야다. 재미있는 건 미술학원이든 학교에서든 작가중에서든 나와 MBTI가 같은 사람을 한명도 못 만났는데, 이 이직준비를 하는 공간에서는 나와 같은 엠비티아이를 16명 중에 4분이나 만났다. 그분들도 주변에 자기랑 같은 유형 못 만났다며 신기하다고 다들 웅성 웅성 중이다. 뭔가 일생에 한번 볼까한 사람들을 다 본 기분이랄까. 이직하는 이 업계도 쉬운 곳은 아니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직종이고, 열심히 일한만큼 수입이 들어오는 시스템이라 집순이 만렙이자 상사에게 아부떨면 두드러기나는 나한테 맞는 일인것 같다. 아무튼 생업을 하고 그림책을 우직하게 그려 나가려 한다. 고생 많았다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