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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Dec 28. 2023

첫 공황장애

넌 이제 b+야

수능 언어영역 시간 한 지문을 푼 뒤 내 인생 첫 번째 공황이 왔다. 당장 시험을 멈추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신경세포들이 터져나가고 안에서 불인 듯 얼음인듯한 감정에 휩싸여 온갖 물질들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렇게 한 지문 풀고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1년 뒤에 다시 수능시험을 봤을 때도 그 증상이 스멀스멀 오려고 하자 나는 엄지손톱으로 검지를 눌렀다. 그렇게 통증이 불안을 통제하도록 했다. 그 뒤로도 시험을 보거나 발표를 할 때 계속 엄지손톱으로 남모르게 검지 측면을 살이 뚫어져라 누른다.


‘불안’에 관한 책이라면 족족 읽어대고 나니 내 불안엔 유전적인 요소가 컸다. 아빠가 왜 중요한 날에 청심환을 들고 다니는지 알게 됐다.


며칠 전에 토익시험을 치렀다. 시험시간은 짧고 쉬는 시간도 없이 2시간에 200문제를 푼다. 준비기간을 너무 짧게 둔 게 후회됐다. 듣기 평가가 시작되고 몇 문제 풀지 않아 또 손을 꼬집었다. 예전처럼 공황이 온 것은 아니고 정신집중을 하기 위해 열심히 꼬집었다. 아마 손을 꼬집는 게 습관이 돼버린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도 이틀 동안 검지 손가락이 얼얼해 있었다.


20대 중반 유학을 가니 정신과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으면 학교 상담사와 정기적인 세션을 가져야 한댔다. 친구가 집에 가는 길에 할아버지 상담사와 얘기하러 간다는 걸 들어보니 그 친구에게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있었다.


나는 시험이나 발표시간에 공황장애가 생긴다면 그 친구는 비행기나 전철에서 그 기운이 올라온다고 했다. 나는 수능에서 공황이 오자마자 거의 자연 치유돼서 정신과에 갈 일이 없었다.(공황이라고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이게 보통의 불안과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기에 자칭 공황이라고 판단했다.) 왜냐면 재수생의 비참함이 공황을 이겼다. 한 가수가 바쁜 일정 중에 무호흡이 오려고 하자 통장 금액을 확인하고 자연치료됐다고 하지 않은가. 공황 때문에 내 인생 계획이 또 미뤄질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와 달리 무호흡이 오는 증상이었다. 그 친구는 무호흡으로 죽는 것도 좋겠네라는 마음이 들 무렵에 공황증상이 시라졌다고 했다.


불안할 때 검지손가락을 혹사시키는 것 말고도 약간 피곤한 상태를 늘 유지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거나 담배를 한동안 태우던 때도 있었다. 피곤한 상태에선 잡생각이 안 들고 우선시해야 될 곳에 집중력이 높아져서 좋았다.


20대에는 체력이라도 있어서 그런 게 가능했지만 40을 바라보는 30대는 다르다. 체력이 없으니 몸이 처지고 집중도 떨어진다. 맑은 머리로 토익 시험을 보기 위해 본의 아니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멜라토닌 탓인지 체력이 올라가고 불안이 감소됐다.


불안이 엄습할 때면 최악의 상황이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악습관이 있는데 시험을 보기 전에 최대한 불안을 낮추고 싶어 최악의 생각을 어감이 비슷한 말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멍청이’라는 말을 ‘멍뭉이’로 말하면서. 무의식상태를 계속 긍정신호로 바꾸는 거다.


그렇게 첫 토익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책상에 앉아만 있다 나오자라는 마인드로 10시에 잠을 잤다.


시험 치고 10   토익 결과를 얻었다. . 시험 결과에 이상할 정도로 기분 좋았다. 보너스로 불안을  다스린 나에게 ‘B+’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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