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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03. 2024

의욕 상실

17살 소녀의 위로.

17살에 공장에 다니며 간호조무사 시험을 봤다. 파독 간호사가 기 위해 2년을 준비했지만 합격하자마자 바로 채용이 끝났다.  눈썹을  빼다 닮은 첫째 딸과 막내아들은 피는  속이는지 해외에 산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낮에는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방통고를 다녔다. 근무하는 병원에 유독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이 다쳐서 오곤 했는데 그때 한 성실한 공장장을 만나 결혼했다.




대학원 지원이 반년 미뤄졌다. 예상치 못한 미비서류가 생겼지만 가까스로 해결방도를 찾았다. 오프라인 수업으로 모자란 점수를 채우면 됐는데 한 수업이 갑자기 폐강되는 바람에 딱 1점이 모자라 지원이 늦춰졌다. 면접준비로 학원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차에 고민이 우울하게 해결됐다.


사실 난 영어강사로서 자질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노력은 하겠지만 문제는 경력이다.


해외 예체능 전공자여서 초중을 가르치는 데는 이력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지만 고등학생을 가르치기에는 내 경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공인 영어 성적으로 덩치를 키워도 되지만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도도 키우고 싶었다.


영상번역 공부를 할 때 성적에서 항상 내 위에 3명 정도의 수강생분들이 계셨는데 두 분은 영어영문학과출신이었다. 그때 전공자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물론 전공을 해도 번역에 대한 감을 못 찾는 분도 있긴 했지만 내가 미술에 대한 주제가 나왔을 때 긴장감이 생기지 않듯 그런 일말의 불안한 요소를 없애고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교 선생님들이 영어음성학을 가르치시는 분도 있는데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선생님 파찰음이 뭔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당시에 영문학학사에서 영어학 개론 공부를 듣고 있던 터라 다행히 당황할 일이 없었다.


강사의 학력은 얼마큼 중요할까. 영어강사 커뮤니티에 11월부터 참여하고 있다. 신입강사들이 묻는 질문에 종종 선배 강사들이 대답도 해 주고 여러 가지에 대해 서로 공유한다.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가 얼마만큼의 학식을 갖고 있는지. 그중에서 이 사람은 진짜 고수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분이 있었다. 알기 쉽게 그림까지 그려주며 설명해 주신 분이었다. 그분이 개인 과외만 하다가 이번에 학원 면접을 봤는데 학력과 강의력이 별로라는 말을 듣고 집에 울면서 왔다는 것이다.


인서울 학력이 아닌 데도 일타강사가 된 분을 보면 사람에게 능력도 능력이지만 운도 많이 필요한 것 같았다.


기운이 죽 빠져 지친 얼굴로 밥을 먹는데 엄마는 공부는 죽을 때까지 계속하는 거라며 나를 도닥여줬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위로는 진심이었다. 20대에 방통고를 졸업하고 중년에 여유가 생기자 50대에 야간 대학을 다닌 엄마.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도 대학교 졸업장까지 취득했다.


최근에 엄마의 영어를 테스트해 준 적이 있었는데 영어 스펠링 26개를 막힘없이 죽 썼다. 그렇게 여전히 영어 공부를 손에서 떼지 않고 있다.


엄마가 걸어온 길이 말없이 나를 일으켜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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