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을 지어보자.

작은 시작이 큰 걸음으로.

by 정원

2015년즘, 00 그림책 학교라는 사설기관에 들어갔다. 졸업생들의 페인팅 실력을 보니, 나도 저만큼만 그릴 수 있다면, 집에서 혼자 그릴 수 있겠다는, 간단한 이유로 다니게 되었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조형작업을 전공했기 때문에, 페인팅은 어색하다. 입시미술에서 수십 장이 넘는 2절 도화지에 석고상을 수채화로 그린 기억 때문인지 평면미술에 호감이 매우 떨어져 있었다. 지금은 미대 입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대학 졸업 후, 조형작업을 지속하기엔, 작업시간보다 병원에 가는 시간이 많아져, 영문도 모른 채, 그만두게 되었다. 그림책 작가가 될 거다라는 의도는 없었다. 하면 하는 것이고, 말면 말고. 나는 그때 꽤 세상에게 토라져있었던 것 같다. 말도 걸기 싫고, 말도 하기 싫고.


김정원 일러스트



00 그림책 학교 25기. 직장까지 이직하며 지방에서 올라온 20대 후반의 사람. 좋은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붓을 든 40대의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생활에 단조로움을 느껴 책 만들기를 시작하는 20대 중반의 사람들. 다들 이유를 알기도 또는 모르기도, 하지만, 지금 나는 그려야만 한다 라는 마음 하나로 그렇게 3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나는 이중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정원 일러스트

사비로 그림책 한 권을 제작하고 나니, 2년이 지나있었다. 2년을 그렇게 쓰고 너 정말 혼날래?라는 내면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어딘가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그림 기술은 익혔지만, 작업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았고 내 그림들이 무서웠다. 제니 사빌과 프렌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으니, 무서울 만도 하다. 지금, 창고 안, 첫 번째 그림책은 그렇게 미술 가방 깊숙이 보관되어 있다. 부상당한 몸으로 조형작업을 그만두어야 했던 나는, 마음의 위로가 먼저였나보다. 00 그림책 학교의 대표 SNS에 내 그림에 대한 댓글을 보니, 어떤 외국 여자분이 지금 자신의 마음 같다는 댓글을 써주었다. 누구한테 그렇게 위로가 되었으면 되었다. 내 안에 그렇게 어두운 면을 털어내고 나니,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을 보는 눈도 어느새, 바뀌어져 있었다. 그 변화가 꽤 마음에 들었다. 미술작업은 이런 맛에 놓을 수가 없다. 지난한 미해결 상태의 과거가 그림과 함께 툭하고 떨어져 나간다. 의도하지도 않았건만. 무의식이란 무섭다. 그런데 나는 무슨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걸까? 과정도 결과물도 만족스러운 작업을 하고 싶은데.......

김정원 일러스트

00 그림책 학교를 나오니, 전 기수 졸업생들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그분들 중 한 분의 인터뷰 글이 잊히지 않은데, 나와 같이 학원강사 출신이셨다. 00 그림책 학교 기관을 졸업하고, 7년 뒤, 출판사와 연계가 되어, 책을 출판하셨고, 그동안의 노력에 보상되는 상도 받으셨다.


그 작가분의 7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는 그림책 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흘렀다. 아동미술교육을 하며, 아동 그림책 만들기 수업 지도를 6개월 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는 친구, 어르고 달래서 끝내는 친구,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아서 글을 전부 뒤집어 다시 글 편집을 해줘야 했던 친구들 등. 내가 어쩌다 보니 편집자가 되어 아이들의 작업물을 6개월 동안 이끌어왔었다. 작가와 편집자와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작가 자신조차 모르는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편집자이겠구나. 이 둘의 상호관계는 신뢰가 초석이 된다면 정말 좋겠구나.

출처. 싱글라이더

졸업 후에도, 학원일이 끝나면, 그림을 그렸다. 과슈, 유화, 수채화로 초상화를, 주변 물건을, 꽃과 과일을. 요리사가 자기에게 맞는 요리 도구를 찾듯,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대표음식이 무엇일지 연구하는 사람처럼 이 재료 저 재료를 탐구하고 맛보았다. 구태여,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내 작업 과정과 시간을 노트에 세세하게 써가며, 나의 작업일지를 늘려갔다. 아무튼 그렸다. 조형작업을 전공했을 때처럼, 딱히, 작업 중에 희열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결과물을 보고 뿌듯한 마음도 없었지만, 미술활동은 중간에 그만두면 안 된다라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영화 <싱글 라이더>에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공효진이 결혼한 뒤, 바이올린을 중고로 팔 때, "왜 취미로라도 하지" 말하는 남편에게 말한다. "매일매일 쉬지 않고 노력하는 거 힘들고 귀찮아." 저 말이 왜 이렇게 안 잊히는지. 무슨 의미인지 너무 알아서. 다시 시간이 흘러 바이올린 활을 다시 잡게 되는 오디션장에서 공효진은 심사위원에게 말한다. 그만두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바이올린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그래서, 다시 활을 잡게 되었다.


2년 전, 개인 아동미술학원을 오픈하였다. 첫해 그리기 수업이 한 달 중, 2번이라 50 색깔 지구색 색연필로 교본을 자주 만들었다. 재료 준비과정도 짧고, 재료 특유의 냄새도 강하지 않고, 도화지에 스며드는 색감이 단단하고 좋았다. 색도 중간중간 섞어보기도 하고 연구도 해보고, 내 노하우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니, 우리 아가 학생들 색채 감각이 나날이 좋아졌다. 오시는 손님들마다, 아이들 색감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도 하고 색채감각을 키워주세요라는 요청으로 등록하셨던 부모님들도 계셨다. 자신의 색상을 마음껏 표현하는 우리 아가 학생들의 어깨에 힘들어가는 모습 구경하는 맛에 지치다가도 기특해서 웃음 짓곤 했다. 내 머리를 잘 깎아야 하는데 말이지만.


코로나가 왔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월엔 휴원 하게 되었다. 한 달만 이렇게 휴원 하면, 여름은 좋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던 때였다. 학원일을 뒤로하고 아침 10시에 일어나, 바로 커피와 토스트를 구어, 자기 전까지 그림만 그렸다. 색연필로. 학원에 휴원 소식이 알릴 때마다, 내 색연필 재료도 늘어나고, 그림도 늘어갔다. 다시 등원이 시작되기도 했지만, 연말에 2개월의 휴원을 했고, 중간중간 등원 기복으로 집에서 그림 그리는 시간도 많아졌다.


한 달 전, 한 그림책 만드는 교육기관에 원서를 제출했고 심사 통과되어, 그림책상상 학교 심화반에서 올해 책 한 권을 짓기로 하였다. 신청원서 자기소개서 첫 줄도 이러했다. 그림책을 다시 만들고 싶습니다. 준비가 되었고 성장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