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침 8시에 만나는
촉촉달콤한 프렌치토스트와
탄력있게 퐁신한 핫케이크
그리고 딱 어울리는 커피
스마트커피는 이른 아침과 잘 어울리는 카페다. 이제부터 가만 상상해보는 거다. 휴가로 떠나 온 낯선 도시, 겨울 아침의 맑은 공기, 아직 열지 않은 가게가 즐비한 오전 8시쯤의 조용한 번화가. 저기 보이는 전봇대 근처에 따뜻한 조명이 켜져있는 오래되고 아늑한 카페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카페 안을 본다.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았다. 반들반들 윤이나는 밤색 빛깔이 도는 원목으로 된 벽과 탁자가 편안하다. 이 자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까.
스마트커피는 90년이 넘게 운영해 온 교토의 대표 카페다. 무려 1932년 <스마트 런치>라는 이름의 카페로 시작해 <스마트 커피>로 이름을 한 번 바꿨을 뿐 처음 오픈했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있다. 긴 시간 영업해 온 곳인만큼 이 곳에 들어서면 축적된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공간이 주는 포근한 안정감이랄까. 참 신비롭게도 사람이 머물렀던 공간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흔적도 쌓인다. 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곳에는 여러 손님들의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쌓였을 것이다. 짐작하기도 어려운 긴 세월이 공간에 그대로 머물러 온기로 입혀져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50대 남짓의 여성점원이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카페와 닮아 있었다. 어느 가게를 가도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로 끝나는 요청을 듣지만 그 점원은 좀 달랐다. 친절하지만 강단있는 말투랄까. 굽힌 친절이 아닌 어디까지나 동등한 관계에서 건네는 친절이었다. 구김없이 잘 다려 입은 반듯한 셔츠와 잔머리 없이 여러개의 삔으로 단단히 고정한 단정한 머리. 점원의 태도와 분위기마저 스마트 커피의 일부 같았다. 오래된 가게와 그 가게와 닮아 있는 오래 일해 온 점원. 거기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다. 긴 시간동안 이 자리를 지켜오기 위해서 이 가게는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을까. 잘은 몰라도 스마트커피스러움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 아마 10년 전에 왔어도, 30년 전에 왔어도 여기는 지금 이 느낌일 것 같았다. 여기는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이 차분하고 꼿꼿하고 단정한 분위기 그대로 갈 것 같은 느낌. 처음 스마트커피를 찾은 나같은 여행자도 이 작은 카페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역시 메뉴판은 사진이 있는 편이 좋다.(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다. 딱 여기 사진을 넣어야 하는데!) 메뉴판 사진을 보니 말그대로 군침이 고였다. 별로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짧고 굵은 고민 끝에 남편과 메뉴 하나씩을 주문했다. 웬만하면 시그니처에 도전하는 그의 선택은 후렌치 토스트, 사진에 매료된 나는 팬케이크. 그리고 따뜻한 스마트 커피 두잔. 주문한 메뉴가 나오고 둘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같은 팬케이크와 프렌치 토스트에서 당장 포크를 들게 만드는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풍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림같은 메뉴를 시켰다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도 그림 같다니.
*스마트커피 홈페이지에서 메뉴판을 보고 미리 메뉴를 정하고 가도 좋을 것 같다.
팬케이크의 맛
팬케이크가 나왔을 때 일본 애니메이션 속 그림은 실물 그대로를 모사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맛있어 보이려고 애써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냥 사실적인 정물화였구나. 어릴 때 동화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만 그려오고 그림으로만 봐왔던 팬케이크가 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오뚜기 핫케이크 가루로 구워준 팬케이크 말고, 아쉬운 맥도날드 팬케이크 말고, 미국식 디 오리지널 팬케이크 말고, 그렇다고 유행으로 지나간 수플레 팬케이크도 아닌 바로 이 고전적인 동양식 팬케이크.너무 퐁신하지도, 넙데데하지도, 촉촉하지도 않은 이 경도. 게다가 바로 위에 얹어져있는 팬케이크의 상징 노랗고 네모진 버터와 메이플 시럽까지. 동화책에 그려진 팬케이크를 탐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양도 많았다. 다먹었다가는 점심을 2시에 먹어야 될 것 같은 큼직하고 두툼한 양이었다. 사진찍는동안 팬케이크가 식는 것도 아까워서 적당히 찍고(그래서 사진이 좀 아쉽다) 먹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카페에서 그 곳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전적인 팬케이크를 먹고 있으니 밖으로 마차라도 지나갈 것 같았다. 아름다웠고 맛있었지만 좀 더 촉촉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미국식 팬케이크를 최고로 치는 사람들은 퍽퍽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덕분에 느끼하지 않았다. 버터와 메이플 시럽을 넉넉히 바르고 뿌려 먹기 딱 좋았다.
프렌치토스트의 맛
역시 시그니처는 시그니처다. 그의 프렌치토스트가 나왔을 때 직감했다. ‘너가 이겼다.’ 사람들이 원빈과 장동건을 처음 봤을 때 뒤에 후광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하던데. 이 프렌치 토스트가 나올 때 난 그 후광을 봤다. 반지르르하게 빛나는 프렌치 토스트. 사람의 피부로 치자면 꿀광이라고 말할 수 있을 법한 광채와 빛깔이 돌았다. 최고의 밸런스였다. 적당히 두툼한 식빵과 적당히 베어든 촉촉함, 적당히 느껴지는 고소함 그 뒤로 착 달라 붙는 메이플 시럽의 달콤함까지. 어떤 부분에서도 모자르거나 과한 법이 없는 균형점을 찾은 맛과 형태였다. 80년이 넘은 가게에서 이게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면 80년 인증마크가 있는 건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무튼 둘이 와서 메뉴 2개를 시킬 수 있는 건 이렇게나 보람찬 일이다. 혼자 와서 팬케이크만 먹었으면 아쉬웠을 뻔했다. 셋이 왔다면 샌드위치도 시켰을텐데 남편을 하나 더 만들 순 없으니…
식사메뉴와 함께 곁들인 커피도 만족스러웠다. 식사 메뉴들의 맛은 귀여웠고, 커피는 부드러웠다. 특히 커피와 함께 내어 준 스팀밀크가 좋았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한 밀크저그에 담긴 스팀밀크를 커피에 곁들이자 다른 커피가 되었다. 카페라떼처럼 무거워지지도 않으면서 아메리카노처럼 산뜻하기만 하지도 않은 부드러운 커피. 참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지는 메뉴였다.
스마트커피를 간다면 이른 아침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가만 가만 여유를 즐기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여행책자에 쓰여져 있진 않지만 이곳만의 분위기 자체가 즐길거리다. 오래된 다방과 시골할머니집 같은 느낌인데 커피와 빵이 나온다니. 포근한 분위기에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친절, 자꾸 생각나는 빵과 커피 맛까지. 고루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카페를 나오면서 보니 바깥에 웨이팅 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도 가게는 분주해지지 않았다. 자신의 속도와 분위기대로 흘러갈 뿐. 스마트 커피 안에서는 시간의 주인이 그 공간 자체인 것 같았다. 카페에 들어가면 시간은 좀 더 더디 흐른다. 스마트커피의 속도대로.
+덧니. 대학로의 학림다방과 비슷한 무드인데 더 고즈넉하다.
스마트커피(Smart coffee)
주소: 537 Tenshojimaecho, Nakagyo Ward, Kyoto, 604-8081 일본
영업시간: 수~월 오전 8:00 ~오후 7:00 (화요일 휴무)
대표메뉴: 프렌치토스트, 푸딩, 핫케이크
인스타그램
*주소와 영업시간은 구글맵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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