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되찾은 것 같다. ‘느낌’이란 감각을.
남편이 육아에 대해 방법을 전수해 달라고 물을 때마다, 대체로 난 같은 대답을 한다.
“그냥, 느낌이 와. 애가 졸리는구나. 안았을 때 자세 각도를 안쪽으로 이 정도 틀어야겠구나 하는.
아아 이건 느낌인데.”
느낌을 전수하기란 참 어렵다.
“아이의 울음이 솔 톤으로 1분 이상 이어지면 안은 자세를 안쪽으로 5도 정도 기울여.”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물론 느낌 말고도 아이의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들은 있다. 배우면 된다.
그런데 막상 같이 지내다 보면, 결국 더 넓은 영역은 느낌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아주 개인적이다.
해나는 아직 말을 못 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의사소통 방식은 울음, 약간의 표정, 옹알이와 몸짓뿐.
그래서 나는 느낌을 더 곤두세운다. 특히 아플 때는 더더욱.
눈빛이 평소보다 한 박자 느려 보이거나, 안겼을 때 몸에 힘이 덜 들어가는 날이면 마음이 먼저 알아차린다.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지금은 느낌뿐이니까.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끼는지 말로 다 표현 안 되는 마음을 나는 느낌으로 전한다.
그렇게 보낸 애정을 아이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그냥 내 믿음인지 우리 사이는 나날이 깊어지는 것 같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해나가 말을 시작하고, 말로 소통하게 되면
이런 느낌의 교감은 지금보단 줄어들지 않을까.
뭔가 원시적이고 신비로운 감각.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이 없던 시절에만 가능한 대화를 매일 하는 일 같다.
계속해서 우리 사이에 느낌의 교감이 있길, 사라지지 않길. 계속 신호를 보낼게 아가, 너도 내게 신호를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