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보면서 의도가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 (스포 없음)
<흑백요리사 시즌2>를 재밌게 보고 있다. 시즌 1도 이제야 동시에 챙겨보는 나에겐 프로그램의 전개 그 자체도 흥미롭지만, 출연진 한 명 한 명의 캐릭터를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능을 볼 때 따로 시간을 내진 않고 집에서 밥 먹을 때 주로 시청하는데, 백종원 아저씨와 안성재 셰프의 심사 과정은 밥 먹다 말고 노트 앱을 켜게 만들 정도로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심사위원 둘이 참가자들의 음식 앞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백종원 선생님은 늘 "어떻게 먹어야 해유? 뭐부터 먹어야 해유?"라고 묻고, 안성재 셰프는 그 음식을 만든 "의도"를 완성도라는 렌즈를 들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는 이 지점에서 두 개의 성찰의 씨앗을 포착했다. 첫 번째는 [셰프의 주도성]과 [명확한 UX 설계]다.
파인다이닝이나 오마카세 같은 고차원적인 미식 경험은 일반 식당과 다르다. 직장인들이 점심에 늘 가는 식당들이야 뭐, 그냥 들어가서 시키고, 식사가 준비되어 나오면 알아서 잘 먹고 계산하고 나오면 된다. 그치만 요리 '경험' 그 자체를 위해 고액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셰프는 더 'fine'하고 'delicate'한 고객 경험(UX)을 설계하고 가이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프로그램 초반, 백종원의 습관적인 질문에 이제야 처음 생각해 본다는 듯이 "어..." 하며 머뭇거리거나 "원하시는 대로 드시면 됩니다"라고 답하는 셰프들을 보며 나는 손발이 좀 오그라들었다. (반대로, "김치가 입에 먼저 들어가시면 됩니다, 혀에 먼저 닿게요" 라고 가이드해주는 셰프님들을 볼 땐 '저렇게까지?' 싶긴 했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봤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묘한 반성적 성찰을 하기도 했다. 내가 셰프는 아니라 좀 주제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디쉬라면, 그 디쉬를 가장 잘 알고 많이 먹어본 제작자라면, 시식의 순간에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취향은 나중 문제가 된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택의 책임을 손님에게 전가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손님은 명확한 순서와 컨셉을 원하며, 제작자는 그들을 자신의 세계로 확실하게 리드해야 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브랜드의 의도성]이다. 최근에 이디야커피가 애매해진 이유를 다룬 글을 본 적이 있다. 저가 커피의 압도적 가성비도, 프리미엄 커피의 확실한 차별점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의 이디야로 들어갈 이유가 사라졌다는 분석이었다. 브랜드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으면 대중은 길을 잃는다. <흑백요리사>도 그렇고 <쇼미더머니>도 비즈니스도, 본질은 같다. 다 설득하는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결과물을 통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립하지 못했다면 그건 이미 실패한 게임이다. 현실은 차갑다. 잘 정리된 메시지라 해도 설득이 될까 말까 한 세상이지 않은가.
BD인 나에게 이 지점은 묵직한 성찰로 다가온다. BD야말로 설득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솔루션과 가치를 상대방이 믿게(Buy) 만들어야 한다. Buy 한다는 말은 지갑을 연다는 것 그 이상이다. I don't buy it 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듯, 믿지 않으면, 즉 설득되지 않는다면 구매는 일어나지 않는다. 설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제작자의 명확한 의도와 주도성이 고객의 필요와 만날 때 일어난다. <흑백요리사 시즌1>에서 자극적이고 강렬한 편의점 요리에 지친 심사위원들에게 건네진 달콤한 '밤 티라미수'처럼,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가장 정확한 타이밍에 훅 넣어주는, 그런 기가 막힌 설계 능력이 필요하다.
결국 BD의 본질은 기획과 조율에 닿아있다. 세일즈, 그리고 UI/UX 디자이너와도 닮아있다. 경험을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하고 이행하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의도가 명확한 디쉬를 내놓기 위해서는 고객의 경험, 즉 '외부적' 기획과 조율뿐만 아니라 그 디쉬가 cross-functional 하게 준비되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팀과 조직, 즉 '내부적' 기획과 조율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전통적인 협업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기는 하다. 솔로프리너들이 각광받는 시대다. 각광을 넘어 AI라는 흐름을 타고 1인 기업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사례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도 이 '조율'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인간, 인간-AI, 나아가 AI-AI나 인간&AI-인간&AI 같은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중심을 잡는 힘은 결국 명확한 의도 정립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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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 일을 시키는 것, 그리고 일의 결과물을 파는 것. 이 모든 과정에는 주체적인 의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생도 똑같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처럼, 내 삶에 스스로 의도를 세우지 않으면 남이 세운 의도에 끌려다니는 부품이 될 뿐이다.
"뭐부터 먹어야 해유?"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것부터 이렇게 드시는 걸 추천합니다" 라고 담백하면서도 자신 있게 가이드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나의 디쉬를, 나의 삶을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그 확신 있는 대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