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이 하모니가 되도록

by 정요한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타이어와 지면 사이에 마찰이 생겨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는 건 당연한 섭리다.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맞물려 돌아가다 보면 반드시 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발열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엔진이 힘차게 돌고 있다는 증거다.


나의 신입 BD 시절도 그랬다. 대표이사 직속으로 채용된 나의 포지션은 그 마찰열의 한복판에 있었다. 조금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개발 중이던 신약을 글로벌 제약사들에게 기술이전 하기 위해 내가 뽑힌 것이었고, 그전까지는 대표님 혼자 그 역할을 해내고 계셨다. 회사 HR 시스템 안에는 BD라는 포지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갔기에 시스템상으로는 전략기획팀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사무실 구조와 업무적인 이유로 나는 전략이나 경영지원팀이 아닌 임상팀 자리에 배치되었다. 대표님은 자기 방과 최대한 가까운 자리에 내가 5분 대기조 마냥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업무적으로도 BD의 특성상 잠재적 파트너들에게 약을 잘 발표하려면 임상 개발 상황의 모든 것을 꿰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어디에나 끼어 있어야 하는 깍두기 같은 포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대표님이 직접 오더 하시던 일들이 이제 나를 통해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내에 발을 걸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곳에서의 13개월이 5년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임상 본부장님이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예뻐해 주셨다는 말은 나를 그만큼 엄청나게 써먹으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신체를 들여다보면 뼈와 뼈 사이에는 연골이라는 것이 있다. 뼈끼리 직접 닿지 않도록 충격을 흡수하고 윤활제 역할을 해준다. 회사도 똑같다. 일을 (제대로) 하다 보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직 안에서도 돈을 써가며 일이 되게 하는 자들과 그 돈을 관리해야 하는 자들 사이에는 반드시 연골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임상 본부장님은 회계팀 부장님과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으셨는데, 돌아보니 나를 그 사이의 연골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


대표이사실에서 내려오는 모든 내부 결재와 임상팀 결재의 상당수를 담당하다 보니 회계팀 부장님을 뵈러 5층으로 올라가는 날이 많았다. 내부 결재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그때 당시 동료들과 술 한잔 기울일 때면 그만한 안주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가 호랑이 같던 부장님을 웃게 만드는 나를 신기해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내게 복잡한 임상 내용과 파편화된 달러 숫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실수 없이 템플릿대로 상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계열사 4개의 회계를 총괄하며 바쁨의 끝판왕으로 불리던 부장님의 시간을 뺏는 모양새가 자주 연출되었다. 결재는 한 번에 통과되지 못하고, 임상팀에서는 벤더사 송금이 언제 완료되느냐며 나를 조여왔다.


내게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실수를 줄이고 부장님과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작은 선물을 준비해 포스트잇에 짧은 편지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 그 편지가 묘수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늘 웃으며 친절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내용을 적었던 것 같다. 혼내기도 하시고 답답하셨겠지만, 정말로 내가 느끼기엔 친절히 가르쳐주셨기에 그렇게 적었다. 그 이후 다시 결재판을 들고 올라갔을 때, 내 포스트잇은 부장님의 모니터 아래에 붙어 있었다. 내가 회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같이하며 부장님은 "그 메모 덕분에 너를 보면 안 웃을 수가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몸이 전기 신호로 작동하듯, 회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BM)과 조직 문화다. 내가 속한 바이오테크는 스타트업의 결을 띠고 있어 유독 특이한 점이 많은데, 그중 가장 큰 특이점은 조직원 간의 '언어 차이'다. 이는 한국어와 영어 같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사이언스'와 '임상' 세계가 가진 언어의 특수성이 만드는 벽이다. 마치 물과 기름 같은 장면을 자주 봐왔다. 임상 본부장님과 회계팀 부장님, 둘 중 나쁜 사람은 없었다. 한 명은 임상 개발을 끌고 가는 '엑셀'이었고, 한 명은 자금 집행을 조율하는 '브레이크'였다. 그저 역할이 달랐고,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을 뿐이다.


불협화음도 화음이라면 화음이다. 각자의 소리를 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나는 자기 소리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바꾸려 하기보다, 중간에서 조율하는 사람이 제 역할을 다해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자동차 안에 엑셀과 브레이크가 모두 있어야 하듯, 조직의 성장과 존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두 역할이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


-


나는 그 긴장감 높은 관계 속에서 1년을 보내며 '통역'의 중요성을 배웠다. 임상팀은 사이언스의 언어만 고집하고, 회계팀은 운영의 언어만 고집하는 상황에 끼어 마찰로 인한 과열을 방지하고 해소하는 윤활제의 역할을 깨우친 것이다. 건강한 조직은 각 조직원이 자신이 내야 할 소리를 충실히 내는 조직이다. 모든 조직원에게 완벽한 하모니를 기대하며 조직을 꾸릴 수는 없다. 적절한 곳에 연골들을 배치하고 불협화음이 하모니가 되도록 지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BD가 바로 그런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 사업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연골이자 통역가의 역할을 자처해야 관절염 없이 듣기 좋은 선율을 뽑아낼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뭐부터 먹어야 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