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아한 항복

우리는 왜 노력을 구독하기로 했나

by 정요한

요즘 주니어나 신입사원들을 보며 모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결국 태도가 전부다.

AI가 코드부터 기획안까지 순식간에 뱉어내는 2026년의 오피스에서 '실력'이라는 단어의 유효기간은 획기적으로 짧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수록 우리가 마지막까지 붙잡는 건 태도와 안목이라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태도는 하루아침에 설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고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느리고 지루하다.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자책,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마찰력 속에서만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그 성장의 마찰을 견뎌낼 마음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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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테크 세상은 다시 또 한 번 기겁했다. Clawdbot을 지나 OpenClaw로 진화한 새로운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그 존재 자체로 파괴적이었다. 그 압도적인 기능을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전 세계적인 Mac Mini 사재기 대란까지 일어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다. 이제는 진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가 나의 스케줄을 짜고 취향을 큐레이션 하며 인생의 정답까지 내어준다. 편리함의 극치다.


그런데 이 안락함 속에서 문득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편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걸까?

왜 우리 삶의 주권을 한 조각씩 떼어 기꺼이 기계에게 헌납하고 있는 걸까?


요즘 다시 꺼내 읽고 있는 소설 『Dune』의 세계관에는 '버틀레리안 자하드(Butlerian Jihad)'라는 사건이 등장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일을 기계에게 넘겨주었다가 결국 기계의 노예가 된 인간들이 벌인 전쟁이다. "너희는 사람의 정신을 본뜬 기계를 만들지 말지어다"라는 그들의 금기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생각하는 고통'을 포기한 인간이 맞이할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경고였다.


코드는 AI가 짜고 다이어트는 약이 해주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단'이 공짜에 수렴할수록 역설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안목은 더 귀해진다. 하지만 그 안목은 효율적인 작업만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정답이 없는 가치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치열하게 부대끼며 쌓이는 '휴먼 데이터' 속에서만 비로소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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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AI 에이전트들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세상을 재구성한다. 반면, 쉴 줄 모르는 현대인들은 그 속도에 맞추려다 번아웃의 늪에 빠진다. 결코 쉬지 않는 존재와 결코 쉬지 못하는 존재의 공존. 이 불균형한 레이스에서 인간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야 할 핸들은 무엇인가.


결국 다시 '의지'다.


시스템이 모든 것을 최적화해 주는 시대에 굳이 내 의지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낭비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비효율이야말로 우리가 기계가 아님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이며, 나만의 안목을 지켜낼 마지막 보루다. 내가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나'를 꿈꾸며 실패할 자유를 갈망한다. 매년 이맘때면 반복되는 처절한 약속들이 사실은 우리의 주권을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