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거대한 코드 덩어리
영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현실을 앞서가기도 한다. 미래의 기술을 다루는 영화도 많지만 <어바웃 타임>이나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도 있다. 이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이유는 과거를 수정하거나 운명을 바꾸려는 인간의 미련과 욕심이 늘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영역을 건드리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 본다. 한때는 이런 시도를 재미로 보고 인간의 오만한 상상이라며 웃어넘겼겠지만, AI 시대로 들어서면서 '설마' 했던 일들은 하나둘씩 더 현실이 되고 있다. AI 시대가 열리고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부터 '과거'는 순식간에 압축되었다. 과거를 데이터화해 AI에 잘 학습시키기만 하면 현재와 미래의 답변을 뱉어내는 뉴노멀에 우리는 익숙해지고 있다. ChatGPT가 등장한 지 사실 몇 년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멍청하다'고 놀림받던 시절이 무색하게 AI는 이미 인간조차 보지 못한 인사이트를 뿜어내며 우리의 운명을 연산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오고 있다.
모든 걸 가진 인간들은 끝으로 '영원한 삶'을 원해왔다. 욕망의 끝은 영생인 것이다. 영생은 '인간의 영역' 정반대 지점에 있지만 그 산을 오르려는 인간은 늘 있었다.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 욕망의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이것이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를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은 인류를 살려놓는 전통적인 제약사들뿐만이 아니다. 엔비디아와 구글의 행보만 봐도 기술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겉보기에는 바이오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메가테크 기업들이 험난한 신약개발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가진 우주급 인프라와 데이터를 인간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코드'에 들이밀었을 때 비로소 그 기술의 진정한 임팩트가 증명되기 때문이다. 광고 클릭률을 높이는 것보다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본능을 조절하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시스템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유즈케이스(Use-case)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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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왜 엔비디아와 구글이 '바이오'에 '몰래' 집착하는지, 그 기저에 깔린 서구적 세계관을 들여다봐야 한다. 서양 의학의 정수는 MOA(Mechanism of Action, 작용기전)에 있다. 몸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동양 의학의 관점과 달리, 서양 의학은 모든 질병을 명확한 인과관계와 부품의 고장으로 쪼개어 분석한다. 그래서 FDA라는 거대 규제기관은 신약 개발사에게 묻는다. "그래서 이 약이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작용하는 거니?"
이 질문은 생각해 보니 빅테크에게는 기회의 종소리였다. 모든 것을 데이터로 환원하고 시스템적으로 해석하는 데 도가 튼 그들에게 MOA는 일종의 공학적 설계도와 같기 때문이다. 이제 AI는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타겟을 찾아내고, 과거에는 약을 붙일 수 없다고 포기했던 'Drugging the undruggable(공략 불가능한 타겟을 공략한다는 개념)'의 영역을 데이터 연산으로 정복해 나가고 있다. 공략 불가능해 보였던 노화, 탄생, 죽음마저 이제는 데이터와 공학적 접근으로 공략 가능한 타겟이 된 것이다.
인류가 항암제를 통해 죽음을 유예하려 했다면, GLP-1 비만치료제를 통해서는 보다 대중적인 정의의 '건강 회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욕망을 지배하려 한다. 항암제가 암세포의 혈관 생성을 끊거나 면역 세포를 깨우는 등 다각도로 암을 포위해 왔듯, 비만치료제 또한 이제 다중 기전으로 인간의 본능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모방하는 기초적인 단계를 넘어 이제는 복합적인 단백질 결합 기전을 통해 식욕이라는 본능을 다각도로 억제한다. 암세포를 굶겨 죽이듯 본능을 굶겨 죽이는 이 방식은 기술적으로 당연한 수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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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와 구글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모든 문제의 시스템화'와 '공학적 해결'이다. 그들이 이 시장에 참전했다는 것은, 이제 인류의 본능이 더 이상 정신력이나 철학의 영역이 아닌 최적화의 영역으로 완전히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튜닝이 가능한 정교한 코드에 굳이 투박하고 불확실한 '의지력'이라는 구식 도구를 들이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시스템이 완벽할수록 인간의 노력은 불필요한 노이즈가 된다.
이제 기술은 당신이 뚱뚱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친절히 속삭이며 설명해 준다. 그것은 단지 당신의 호르몬 시스템에 버그가 있거나 스위치가 고장 났을 뿐이니, 의지력으로 싸우지 말고 우리가 제공하는 정교한 작용 기전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과거 키트루다가 특정 암세포 신호를 추적하는 혁신을 보여주었다면, 이제 GLP-1은 대사 조절이라는 트리거를 통해 인간의 질병 전반을 재설계하는 범용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라는 시스템의 기본값을 다시 쓰는 ‘시스템 디자이너’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이는 신약 개발이라는 비즈니스가 단순히 아픈 곳을 고치는 것에서 신체의 기본값을 우리의 의지대로 '튜닝'하는 영역으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신체적 고통은 돈과 기술로 정복될 것이고,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던 지점들이 해결될수록 삶은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거세하는 것과 같다.
인류는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의지'의 시대가 저물고 정교하게 설계된 '기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