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틈새에서 피어난 6조 원의 비즈니스

이왕 돈 쓸 거면 우아하게 쓰고 싶어 하는 우리 인간들.

by 정요한

우리는 비만치료제 이전에, 이미 비만 그 자체로도 의료계의 큰 싸움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비만은 질병인가, 아니면 개인의 선택인가?


이 짧은 질문 하나에 수십 조 원의 자본이 이렇게까지 움직일 거란 걸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비만은 1997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공식적인 '질병'이었다. 하지만 그 공식적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 속에서, 그리고 심지어 일부 의료진의 무의식 속에서조차 논쟁은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그 저변에 깔린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의지력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하기 거부했던 쪽의 사고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왜 못해?"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변화시켜 체중을 감소시키는 건 자기 선택의 영역인데 그게 안 된다는 건 의지력과 절제력이 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만이 질병으로 완전히 인정되고 점차 대중의 패러다임까지 바뀌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유전적 요인, 호르몬의 오작동, 심지어 특정 약물의 부작용 등 자유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요인들에 의해 유발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4장에서 다뤘던 뇌의 전쟁을 소환해야 한다. 고결한 전두엽의 의지본능에 충실한 변연계의 굶주림을 이길 수 없음을 과학이 증명해 준 순간, 인간은 비로소 안도했다. 비만이라는 질병을 뇌의 질환이라고 보게 되면서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합의가 얼추 잡히게 된 것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는 게 아닌, 비만이라서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해석이 과학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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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각광받고 있는 비만치료제들이 결국 호르몬 모방제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 약들은 지방을 직접적으로 제거하는 기전이 아니라 뇌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줄이고 포만감을 늘린다. 호르몬 조절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력을 외부적 개입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이 '정의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시장의 폭발을 불러왔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곧 6,000억 원을 넘어 1조 원을 바라보고, 글로벌 시장은 이미 수십 조 원 단위로 팽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히 '살 빼는 약'이 아니라 '만성 질환 치료제'로 규정되는 순간, 보험 적용의 명분이 생기고 처방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본은 의지라는 불확실한 단어 대신 질병이라는 확실한 수익 모델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 논쟁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들 또한 뇌의 보상 회로가 고장 난 환자인가 아니면 그저 의지가 약한 중독자인가? 의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사회적 시선과 처방은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자본이 유독 비만에만 이토록 관대하게 질병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만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잠재적 고객인 거대 시장이며, 평생 관리해야 하는 '구독형 모델'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중독은 여전히 손 대기가 까다롭나 싶다. 자본은 돈이 되는 중독만을 질병의 영역으로 우아하게 끌어올린다.


이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여기서 인간의 아주 내밀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사회적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정신과 약 같이 여전히 비만 약물을 쓴다는 것은 금기의 영역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돈을 쓸 거면 '우아하게' 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의지력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약을 사 먹는다"라는 모양새는 누구나 피하고 싶다. 그것은 왠지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의료화(Medicalization)'라는 마법이다. "나는 비만이라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처방받았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약함은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소비자의 모습만 남는다. 비즈니스는 바로 이 지점, 인간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자존심의 틈새를 정확히 공략했다. '질병 치료'라는 강력한 방패 뒤에 숨어 마음껏 약물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포장지를 벗겨내고 말해볼까? 우리는 지금 돈을 주고 의지력을 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아껴 살을 편하게 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은 그 자존심을 지켜주는 대가로 6조 원이 훌쩍 넘는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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