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by 정요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취업 준비생 시절, 나는 참 과분한 도움을 많이도 받았다. 지인인 줄로만 알았던 분이 알고 보니 유망한 바이오텍 회사의 CFO 상무님이셨고, 그분의 멘토링과 그분 덕에 연결된 업계의 대단한 선배들까지. 그 '마을'이 없었다면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첫 직장에 안착하는 행운은 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취뽀 후에도 [바이오 취업 정보] 오픈 카톡방을 2년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BD' 키워드가 보이면 후다닥 등장해 내가 아는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적으로 연락해 오는 청년들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 상담해 줬다. 내가 크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했듯, 나도 누군가의 마을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취업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분들을 만날 때면 나는 늘 현직자 인터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한다.


"xx님의 여느 평범한 화요일은 어떻게 9 to 6가 이루어져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나 같은 경우 약 7:3의 비율로 나뉘어 있다고 답한다. 사업개발이라는 직무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향해 있지만 파트너를 만나 웃으며 악수하거나 R&D팀과 회의하는 '명반응'의 시간은 3할에 불과하며, 나머지 7할은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암반응'의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식물이 빛을 받아야만 자란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건 딱 절반만 맞는 말이다. 광합성은 두 개의 사이클로 이루어져 있다. 빛을 받아 에너지를 만드는 명반응(Light Reaction)과, 그 에너지를 탈탈 털어 포도당 하나를 만들어내는 암반응(Dark Reaction). 암반응은 빛이 필요 없는 단계다. AI 시대에 누구나 클릭 몇 번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파편화된 정보를 실력으로 변환시키는 지루한 암반응을 견디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진다. 암반응 없이는 어떤 빛을 받아도 포도당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취준 시절 멘토 상무님은 내게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며 일본 대형 제약사의 전무님을 연결해 주셨다. 한 회사 면접 과제로 ADC 약물인 엔허투(Enhertu)의 개발 및 임상 이력을 조사해야 했는데, 나를 위해 엄청난 인맥 찬스를 소모해 주신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겐 말도 안 되는 거물 같은 분 앞에 설 기회였다. 하지만 그 찰나의 명반응을 위해 나는 일주일간 논문과 데이터 속에서 혼자 암반응을 돌렸다. 하루 종일 그 약만 팠다. 그렇게 내면에 에너지를 꽉 채워두었기에 전무님의 빛이 닿는 순간 고도의 합성을 시작할 수 있었다.


-


그 면접장으로 향하던 아침, 멘토 상무님께 카톡이 왔다.


"겸손하고 당당하게."


일주일간 논문을 팠고, 전무님께 (대외비는 아니지만) 필살 무기도 얻었고, 밤새 자료를 만들었다. 근데 내 멘토가 마지막으로 건넨 건 전략도 팁도 아니었다. 태도였다. 취준생 신분으로 블록버스터 약물을 개발한 회사의 임상본부장 전무님 앞에 앉아, 그리고 면접장에서 나는 그 태도를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실전에 올렸던 것이다. 어설펐을지 몰라도 그날이 내가 이 말을 내 것으로 삼기 시작한 날이었다.


결국 그 회사에서는 2차 CEO 면접도 스킵하고 바로 입사 가능하냐는 오퍼를 받았고, 같은 발표로 면접을 치른 다른 회사에서도 최종 합격했다. 2023년 초의 이야기지만 나는 여전히 이 두 분의 '마을'께 꼬박꼬박 명절 인사를 드리고 있다.


진정한 겸손함은 무지함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자세가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당당하게 선택한 태도다. 그리고 당당함은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존재론적 자존감, 그리고 충분한 암반응을 거쳤다는 준비된 자신감.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완전한 당당함이 나온다.






이 태도의 힘을 가장 극명하게 체험한 또 한 번의 순간은 보스턴 주재원으로 발탁된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이직한 뒤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입사 후 처음으로 이사님께 호출을 받았다. 그간 팀장님 하고만 일을 해온 구조였던지라 어떤 중요한 사항으로 날 부르시나 궁금했다. 살짝 긴장한 채 노크하고 들어간 방에서 이사님은 자리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때 첫 질문.


"요한,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순간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뭐지?'

'없다고 해야 하나 있다고 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되나 아니면 일단 웃어넘겨야 하나?'


1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된 마냥 머리를 겁나게 굴렸다. 결국 시간을 끌면 꼬일 것 같아 바로 말씀드렸다.


"아뇨, 없습니다. ㅎㅎ"

실제로 당시엔 솔로였으니, 없다고 말씀드리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다음 질문.

"미국 갈 생각 있어요?"

"네."


1초도 안 되는 찰나, 즉답보다 빠른 즉답을 쐈다.


이사님은 잠시 끄덕이시더니 앞으로의 그림을 펼쳐놓기 시작하셨다. 아마 보스턴이 될 미국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기회가 있는지. 나는 그 그림 안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둘 다 조금씩 흥분해 있었던 것 같다.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방에서 나오기 전 한 가지만 더 말씀드려도 되냐고 여쭙고 한 마디를 던졌다.


"만약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어도 저는 '네'라고 했을 겁니다."


진심이었던 동시에 몹시도 전략적인 수였다. 얼마큼 먹혔(?)는지는 모르겠지만.


-


내가 생각해도 놀랍다.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마인드가 이미 내 안에 장착되어 있었기에 그 방에서 망설임 없이 "네"를 외칠 수 있던 것이다. 그때는 그냥 직감이었는데 돌아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크리티컬한 순간에 잘 발동된 걸로 보인다. 상사가 저런 큰 제안을 던질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저기서 '빼는' 것은 상사가 나를 위해 돌려본 시뮬레이션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저런 제안을 내게 던졌다는 것은 내가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나는 그때 그걸 믿었다. 설령 지금 부족하더라도 암반응을 거쳐 결국 길을 뚫어내겠다는 확신. 그게 담긴 '네'였다. 그게 내 존재론적 당당함, 내 겸손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가능했던 건 온 마을의 도움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도움과 운을 내 성장의 포도당으로 변환시킨 것은 결국 나 스스로 감당해 낸 고독한 암반응의 시간과 그 시간을 지탱해 준 마음가짐이었다.


좋은 마을에서 잘 자란 아이는 그 마을에서 또 다음 세대를 기른다. 하지만 간혹 담장을 넘어 그런 마을을 다른 곳에도 세우려는 돌연변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그런 돌연변이 같다.


아니, 그런 돌연변이가 되고 싶다.


-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잘 자란 아이는, 언젠가 한 마을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보스턴에서, 새로운 "네"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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