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생각하고 있다.

by 정요한

새로운 모임에서 슬슬 친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있다. "생각보다 되게 활짝 웃으시네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대부분은 내가 의도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게감을 선택한 것 같다. 내 목소리와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히 있으면 내 입꼬리는 0에 수렴한다. 하지만 웃으면 활짝 웃으니 그들이 느끼는 간극이 어떨지도 이해는 된다.


말에는 두 부류가 있다. "생각보다 훨씬 다정하시네요", "제가 생각한 제주도가 아니에요" 같은 빗나감의 말. 그리고 "딱 내가 원했던 맛이야", "역시 제가 생각했던 분이시네요" 같은 적중의 말. 어떤 말이 더 듣기 좋을까?


사실 두 부류의 말을 비교하려면 생각의 층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말하는 자의 입장과 듣는 자의 입장이다.


류시화 작가는 위쪽 류의 말을 듣는 걸 즐기는 듯하다. 그런 말을 통해 자신이 자유 영혼임을 느끼고, 타인의 예측에서 벗어날 때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첫 장의 주인공 격으로 등장하는 제주도에서 만난 어느 독자는 위쪽 류의 말을 실망의 표현으로 뱉는다.


"당신이 상상하는 지구 행성이 아닐 거야.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이 아닐 거야. 그래서 하루하루가 난해하면서도 설레고 감동적일 거야."

첫 장 마지막 즈음에 저자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려고 하는 영혼에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가져와봤다. 김동현의 스트레스 많이 받을 거야~ 뒤를 잇는 밈 감이지 않은가?


나도 이런 류의 말을 많이 들었다. "좀 싸가지 없는 타입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요." "생각보다 F 같으신데요? T라서 차가울 줄만 알았는데." 심지어 땃T라는 별명을 얻은 적도 있다.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딥토크를 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깊은 모습에 대한 묘사를 듣고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라서 놀란 것도 있겠지만, 나도 내 남동생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늘 있던 것 같다. 동생은 나 같은 모범생 결이 아니었다.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OS가 깔린 게 분명하다. 나는 규칙적이고 어떤 틀이라는 가이드를 선호했던 반면 동생은 그딴 거 다 필요 없고 내 맘대로 해볼 거야 타입이었다. 그렇게 자라와서 그런가, 오히려 내가 '의외로'의 느낌을 더 많이 내뿜게 된 건.


이제 말하는 입장에 서서. 규칙적인 나는 일상에서 안전한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같은 식당, 같은 메뉴를 자주 먹어도 괜찮은 사람이다. 오히려 좋다. "크으...딱 내가 원했던 이 맛이지"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음식을 좋아한다.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하지 않는가. 여행을 갈 때는 새로운 걸 경험하러 간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 새로움도 내가 미리 그려둔 어떤 느낌이 있다. 그게 실제로 맞아떨어질 때의 그 감각, 나는 그게 꽤 좋다.


역시, 난 내 생각보다 더 복합적인 인간이다.


류시화 작가는 책의 극초반부터 자신의 필살기인 책 제목을 까버린다. 맛있는 밥반찬을 먼저 먹어버리는 자와 아껴두었다 먹는 자. 늘 두 부류가 갈린다. 나는 아껴두었다 먹는 쪽인데 류 작가는 먼저 먹어버리는 분 같이 보인다. 나였으면 최소 중간이나 후반부까지 아껴뒀을 거다.


그런데 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생각은 현재에서 하지만 미래를 향한다. '생각해 볼게'라는 말은 어떤 제안이 현실이 됐을 때를 시뮬레이션 돌려보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은 우릴 준비시켜주기도 하고, 동시에 가두기도 한다.


필살기를 초반에 써버린 게 조금 싱겁긴 하다. 하지만 그가 먼저 꺼낸 이 패로 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펼쳐줄지, 이미 기대가 된다.


이 봐라. 나는 이미 생각하고 있다. 책을 읽어갈수록 "너가 생각하는 책이 아닐 거야"라고 말하는 그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 20260225 //



역시나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으로]라니. 이 사람, 나랑 좀 비슷하다. 아니, 내가 이분과 비슷한 건가. 내가 무게감에 대해 쓴 줄 어떻게 알고.


나도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 나도 가벼움을 경계하고 의미와 깊이의 부족이 오지 않도록 무게를 끌어안아왔다. 제목도 그렇고 이 챕터를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인생은 무거어업게 살라고 의도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겨주신다. 행복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풍선이 하늘로 떠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지지, 무거운 돌을 들고 애쓰며 걸어가는 그림이 떠올려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왜 어떤 이들은 고생을 자처하는가? 왜 행복을 끌어안지 못하는가?


내 말이.


저자가 말하듯, 우리는 온갖 생각들로 정신을 무겁게 만든다. 무거움으로 깊이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거다. 결국 욕심이다 욕심. 이 땅에서의 삶에 너무 충실해진 나머지, 생각이 빗나가도록 두지 못한 거지.


이제라도 자유를 찾아 떠나자.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면 늘 떠나는 존재들이라 부럽다. 나도 일반 사람들보다 많이 떠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늘 '안착'을 바라왔던 것 같다. 안정감을 원했다. 그치만 떠나고 적응하고 또 떠나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언제 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때를 살피는 버릇이 들었다. 눌러앉고 싶은 마음에 무거워지고 싶었나.


오늘 아침에도 러닝을 나갔다. 보스턴엔 3일에 걸쳐 40센티의 눈이 왔고, 그 잔재가 아직도 도처에 싱싱하게 쌓여있었다. 뛰면서 눈을 보다가 문득 안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살포시 내려앉아 땅 위에, 또 다른 눈 위에 안착하는 눈. 꼭 무거워야만이 안착하는 건 아니다. 안착해도 온도가 낮아 얼게 될 때도 있고, 염화칼슘과 인간에게 밟혀 진흙탕으로 녹아버리는 때도 온다. 아파트가 아닌 미국식 집에 사는 분들은 눈 치우느라 고생한 이야기로 스몰 토크를 채운다. 그분들에겐 눈은 무겁다.


온도 차이구나.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빛이 쬐면 무거운 눈 언덕도 서서히 녹아내린다. 마음속이 나도 모르는 사이 꽁꽁 얼어버리셨는가? 그래서 행복이 미끄러져 하염없이 흘려내려 가는가?


마음의 온도를 높이자. 마음을 가볍게 하라는 말보다 온도를 높이라는 말이 좀 더 와닿는다. 1kg를 빼라는 말보다 1도를 올려보라는 말이 왠지 좀 더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이 들리는데.


가벼워지기보다 따스함으로 눈을 녹여보자.


- 2026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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