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기니피그의 산책
미슐랭 원스타 우나기 히로카와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대나무 숲 치쿠린으로 향했다. 치쿠린은 竹林으로 말 그대로 대나무 숲을 의미한다.
치쿠린은 굉장히 규모가 큰 대나무 숲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대나무 수가 몇만 그루는 되어 보였다. 초록빛 대나무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심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면 대나무는 참 신기하게 생겼다. 소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경우는 갈색 나무껍질이 온몸을 견고하게 감싸고 있는데 대나무의 몸통은 잎과 같은 초록색이고 그 생김새는 다른 나무들과는 너무 다른 원통형이다. 원통형이라 그런지 직선 형태로 곧게 자란다. 마치 갈대들처럼 바람이 세게 불면 대나무도 흔들릴 것 같다.
예전에 대학생 때 내일로 기차 여행으로 담양 죽녹원 대나무 숲을 가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 부산 기장에도 대나무 숲이 있다고 한다. 왜 대나무들은 대부분 한 군데에 모여서 숲을 이루는 걸까? 사람이 집중적으로 한 군데에 심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대나무도 사람처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무리, 사회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치쿠린의 대나무들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치쿠린을 구경하고 길이 예뻐서 목적지 없이 걸어 다녔다.
위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표지판의 지도에는 교토의 절들이 표시되어있었다. 그 표지판을 보니 교토에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절인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등을 제외하고도 정말 많은 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교토에는 무려 1600개의 절이 있다고 한다. 정말 많아도 너무 많네.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절들을 찾아보는 절 투어도 재밌을 것 같다.
산도 나무도 들판도 모두 초록빛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도 보았다. 동네 놀이터도 있었고 놀이터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오래된 일본 전통 건축물의 집들도 있고, 키가 낮은 현대적인 아파트도 있었다. 동네는 참 예뻤는데 관광객이 많아서 힘들 것 같았다. 어딜 가든 사람은 많았다. 나는 보통 계획에 맞춰서 여행을 가는데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아름다운 곳을 구경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기묘한 장면을 보았다. 어떤 아저씨가 기니피그 같이 생긴 동물을 놀이터 모래 바닥에서 산책을 시키고 있었다. 보통 애완동물과 산책이라고 하면 강아지에게 목줄을 묶고 주인과 함께 신나게 걸어 다니는 게 생각난다. 하지만 기니피그의 산책은 활발하게 뛰어다니기보다는 낯선 야외 환경에 당황해하여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며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평소에 작은 우리에 살았을 기니피그에게 놀이터는 너무나도 크고 방대한 자연이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기니피그가 너무 멀리 가면 손으로 데려오곤 했다. 휴대용 박스가 많았는데 기니피그가 여러 마리 있었거나 먹이를 가져온 것 같았다. 우리 가족만 이 장면을 신기하게 본 게 아니라 현지인들도 신기해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가까이 가서 쳐다보고 그랬다. 바깥공기도 쐐주고 모래밭도 밟게 해주는 아저씨에게서 기니피그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애완동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속된 말로 '개팔자가 상팔자다.'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착하고 좋은 주인을 만나면 정말로 그럴 것 같다. 어떤 개집은 사람 집보다 좋아서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먹고 살 걱정 없이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꼭 좋기만 한 건 또 아닐 것 같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자신의 동의 없이 중성화 수술을 당하고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고, 주인이 출근한 시간에는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심한 경우는 주인을 잘못 만나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얘기하는 건 개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아라시야마 지역에서의 관광을 모두 클리어하고 오사카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교토 메인 거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았다. 물론 골든위크라 사람도 엄청 많았다.
그 유명한 요지야 카페는 줄이 너무 길고 자리도 없어서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교토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동양풍의 얼굴이 라떼 아트로 유명해진 카페이다.
요지야 카페 옆에는 요지야에서 만드는 화장품들이 있었다. 화장품은 가격이 좀 비싼 것 같았고 선물용 같은 빗은 훨씬 더 비쌌다. 카페에서 화장품을 만들어서 파는 게 좀 신기했다. 여기 아니면 못 구할 것 같아서 조금 혹했지만 화장품의 퀄리티가 좋은지 알 수가 없어서 사진 않았다.
귀여운 리락쿠마 매장도 구경하고. 저런 게 볼 때마다 귀엽고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토 안녕~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에 도착했다.
예약했던 호텔은 "온야도 노노 난바"였다. 가격은 1박에 34만 원 정도.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니 성수기라 비싸더라도 좋은 호텔로 잡았다. 이 호텔은 예전에 한번 숙박했던 경험이 있었던 호텔이었다. (그땐 3월이라 가격에 20만 원 초반대로 조금 더 싸긴 했다.) 이 호텔의 장점은 다다미식이라 신발을 벗고 다니는 게 편했고(신발은 1층에 신발장에 넣는다.) 방이 깔끔하고 침구류가 푹신푹신하게 좋다. 호텔 조식도 맛있고 저녁엔 공짜 쇼유 라멘도 준다. 목욕탕도 있는데 좋은 경치는 없지만 나름 노천탕도 있다. 짐을 호텔에 풀고 푹 쉬다가 저녁에 도톤보리에 저녁도 먹을 겸 구경을 갔다.
호텔은 도톤보리의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톤보리의 동쪽 입구로 들어갔다.
도톤보리의 유명한 '카니도라쿠'라는 게요리 집이다. 도톤보리의 가게들은 경쟁이 심해져서 한 명이라도 더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수 있도록 특이하고 큰 간판을 달은 가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 게는 다리가 아니라 눈알이 움직이고 있었다.
금룡 라멘의 간파인데 용이 건물 내부를 드나들다가 금룡 라멘 간판을 찢고 나오는 모습이 역동적이고 너무 멋있다.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도톤보리 하면 오꼬노미야끼 아니겠는가. 도톤보리의 유명한 오꼬노미야끼 집들은 알아왔는데 사실 유명한 집들은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유명한 집 몇 군데를 가보고 줄이 너무 길면 그냥 길거리의 오꼬노미야끼 집 중 웨이팅이 없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길을 가는데 치보 식당에 줄이 하나도 없는 걸 발견했다. 예전에 여기 지나갈 때는 줄이 꽤나 길어서 2층 입구부터 계단을 타고 1층까지 줄을 서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유명한 집들의 웨이팅 상태를 보러 갈까 살짝 고민했지만, 여기도 나름 맛있다고 알려져 있고 부모님은 웨이팅을 싫어하기 때문에 바로 치보 식당으로 전진했다.
오꼬노미야끼에는 계란 반숙을 추가해봤는데 크 탁월한 선택이었다. 개인적으로 오꼬노미야끼나 야끼소바는 여러 군데에서 먹어봤지만 특별히 맛이 엄청 다르거나 특별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맛있는 곳에 못 가봐서 그런 걸까? 여기도 막 엄청나다 까지는 아니었지만 맛은 매우 훌륭했다. 가쓰오부시를 올려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파가 올라가는 게 특징이었다. 달달한 간장 소스와 각종 해물, 야채, 반숙 계란과 어우러지는 오꼬노미야끼와 야끼소바는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밥을 먹고 글리코상이 있는 메인 거리로 향했다. 글리코상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루빽빽했다. 글리코상을 볼 수 있는 다리 양옆으로 아케이드 상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세상에 보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작년 3월에 오사카 온 적 있었는데 그때랑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인파였다. 아케이드 상가는 정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아 보여서 들어가서 구경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역시나 골든위크엔 일본 여행 가지 말자!
여기가 짠내투어에서 박나래 씨가 입구만 지나갔던 클럽인가.
온 김에 돈키호테도 들렀다. 돈키호테는 1층에는 사람이 엄청 많아서 쇼핑하기가 정말 힘들었지만 그 위에 층부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쇼핑하기에 편했다. 문구류를 몇 개 샀는데 간지 나는 나무 색깔의 4색 볼펜을 사려다가 비싸서 참았다.
도톤보리의 밤 문화를 즐겨보기 위해 이자카야를 찾았다. 일본어도 모르고 이자카야도 어딨는지 모르겠어서 가이드북에서 봤던 토리기조쿠라는 이자카야를 찾아갔다. 지점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처음 갔던 곳은 웨이팅이 30분이 넘어서 포기, 두 번째 간 곳은 웨이팅이 10분 정도라서 조금 기다려서 들어갔다.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안주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많고 시끄러웠다.
분명히 위 사진의 가게 입구에 보면 금연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가게에 들어가니 재떨이가 있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금연이라고 표시해놓은 거지. 일본은 가게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많다. 어머니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셔서 입구의 금연 표시를 보고 들어갔는데 실제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어서 가게에 대해 실망이었다. 그럴 거면 금연 표시해놓지 말아야지. 실제로 금연이지만 담배피는 사람에게 재재를 가하진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특별 이벤트로 2682엔에 먹을 것과 음료 무제한, 1192엔에 먹을 것 무제한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항상 파는 것은 아니고 한정인 것 같았는데, 무제한에 저 가격이면 엄청 싼 것 같다.
나는 일본인들은 점잖고 조용한 줄 알았는데. 처음에 자리에 들어가자마자 옆 테이블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당황했다. 옆 테이블에는 여자분들 네 명에서 술을 마시는데 정말 시끄러웠다. 뭔가 술 게임 같은걸 하는 것 같았는데 술이 많이 취하셨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깔깔거리셨다. 진짜 너무 시끄러워서 멘탈 터지는 줄 알았다. 일본인들도 조용하기만 한 건 아니구나. 일본인들도 술 게임을 할까? 우리나라 말고도 술 게임이 있는 나라들이 있을까? 전 세계 술 게임 백과사전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
다행히 옆자리 누님들은 시간이 다돼서 그런지 금방 나가셨다. 나가시고 나니 너무 조용해져서 숨통이 틔였다.
메뉴를 고르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메뉴는 자리에 있는 태블릿으로 주문할 수 있었는데 영어로도 볼 수 있었지만 해석이 구글 번역기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힘들게 메뉴를 골라 주문했다.
나는 새우 대가리를 참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우튀김 대가리는 부산의 한화 콘도에서 파는 새우튀김의 대가리인데 먹으면 정말 고소하고 씹는 식감이 크리스피하여 너무 좋다. 여기서 먹은 건 새우구이였지만 대가리까지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면 속이 쓰리셔서 무알콜 맥주를 드셨다. 신기했던 건 우리나라 가게들과는 달리 일본 여행 동안 갔던 모든 식당에서 알코올 프리 맥주를 팔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는 선토리 알코올 프리 맥주가 있었고 심지어 살면서 처음 본 무알콜 맥주 전용 잔도 있었다.
무알콜 맥주의 매출은 일반 맥주보단 적을 것이다. 술은 못 먹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무알콜 맥주를 파는 것 같았다. 혹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무알콜 맥주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에 가게마다 무알콜 맥주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담으로 무알콜 맥주는 알코올이 아주 조금 들어있다. 한국 주세법상 알코올이 1% 이하인 음료는 논알코올 맥주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극소량이라도 임산부에겐 위험할 수 있으니 마시지 말도록 하자.
선토리 맥주잔에는 가게 상호도 적혀있었다. 굉장히 큰 가게인가 봐.
토리키조쿠 가게는 가격이 저렴해서 좋았지만 시끄러워서 부모님과 함께 가기에는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힘들 정도였다.)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다른 곳에 가는 걸 추천드린다.
돌아오면서 먹었던 치보 오꼬노미야끼집에 웨이팅이 있는 걸 보니 묘한 승리감이 느껴졌다.
돌아와서 호텔에서 주는 공짜 쇼유 라멘도 하나 먹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역시 여행은 식도락 여행이고 살도 몇 키로 쪄줘야 여행 잘 다녀왔다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일본 여행의 두 번째 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