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지금 다녀온 여행기가 아니라 예전에 다녀왔던 여행기입니다. 사진에도 보시면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외출도 여행도 힘든 시기에 독자분들께 랜선여행으로 여행가는 기분이 들게 해드리려고 올렸습니다. 이러한 설명없이 글을 업로드하여 오해를 만든 점 죄송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카레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카레를 해주시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버지 입으로 "나는 카레를 좋아해."라고 들은 적은 없고 어머니가 "너희 아빠는 카레를 좋아하지."라는 얘기로만 들었던 것 같다. 아빠 카레 좋아하시는 거 맞겠지?
아버지와는 다르게 나는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 취향은 유전되지 않나 보다. 나는 냄새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강한 카레 향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카레의 노란색이 싫다. 카레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노란색이 입맛을 떨어트리는 것 같다.
카레를 싫어한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는 맛있게 먹는다. 고등학생 때 급식실에 가면서 카레 냄새가 나면 "아~ 오늘 카레야? 카레 싫은데."라고 말하면서도 맛있게 카레를 밥에 슥슥 비벼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 가끔은 카레 전문 가게에서 카레를 사 먹을 때도 있었는데 매번 맛있게 먹었다. 카레를 싫어하는데도 먹을 땐 맛있게 먹으니 이상하다.
세 번째 날의 첫 관광지인 오사카성을 가는 길에 '극락우동' 이라고 하는 오사카 2위 카레 우동 집이 있다는 것을 여행 가이드북에서 보고 알게 되었다. 식당이 여행 동선에 위치해 있고 아버지가 카레를 좋아하셔서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맛집은 언제나 기다리는 줄이 길고 부모님은 줄 서는 걸 싫어하시기 때문에 갈지 말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11:30이 오픈이니 15분 전인 11:15분에 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오픈 30분 전에 가보자고 했다가 그렇게 일찍 갈 필요 있냐고 해서 15분 전에 가기로 했다.)
오사카 성과 가까운 극락우동
카레 우동을 11:30에 먹기로 했지만 부모님의 아침 식사를 굶게 해 드릴 순 없는 법, 우리 가족은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텔 근처의 "마루후꾸 커피점"이라는 곳에 가서 커피와 빵을 먹기로 했다. 마루후꾸 커피점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무려 85년이나 된 오래된 카페다.
요즘 많이 생기는 핫한 카페나 체인점 카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카페다. 카페 외관은 벽돌로 되어있어서 유럽 느낌이 난다. 카페 이름과 문양이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다. 카페의 내부의 기둥과 바닥, 테이블이 나무로 통일되어 있고 노란색 조명이 편안함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유럽풍의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분위기의 깔끔한 카페였다. 일본의 카페들은 흡연이 가능한 곳이 많은데 여기는 금연이라 간접흡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카페에서 파는 메뉴는 굉장히 다양했다. 커피와 빵, 팬케이크, 도너츠 등이 있었는데 11:30에 점심을 먹기 위해 적당히 배만 채우기로 했다. 빵과 커피의 맛은 무난했다. 내가 마신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굉장히 진했다. 한국에서 흔히 마셨던 스타벅스 커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숙소가 난바에 있다면 한 번쯤 가볼만한 카페이다.
극락우동 오픈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다마쓰쿠리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환승하는 중에 어떻게 환승해야 하는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가는 방향이 같아서 직접 길을 안내해주셨다. 너무 친절하셨고 고마웠다.
환승역에서 나는 너무 배가 아파서 지하철 화장실을 들렀다. 그런데 화장실에 난생처음 보는 것이 있었다.
비데기에 SOUND 버튼이 있었다. 이게 뭘까 하고 눌러보니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나왔다. 아래에는 음량도 조절할 수 있었다. 내가 추측하는 이 기능의 용도는 볼 일을 볼 때 나는 소리(풍덩 이라든가, 푸드득 이라든가...)를 다른 사람들이 못 듣게 하는 용도가 아닐까 싶었다. 일본인들은 유치원에 들어가서 "남들에게 피해 끼치지 마라."라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운다고 한다. 공중 화장실에서의 소리도 남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이런 것을 만든 것일까?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세면대 한쪽에 DSLR 카메라를 두고 씻고 있었는데 어떤 일본인이 나에게 "저거 너의 것?"이라고 물어봐서 "하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분이 "젠장"과 비슷한 단어를 얘기했던 것 같다.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카메라가 아니면 가져가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역 사무실에 갖다 주려고 했을까? 손을 씻을 때도 카메라 스트랩을 몸에 메고 있어야 했다. 여행 가면 꼭 조심하자.
다마쓰쿠리 역에 내려서 극락우동으로 향했다. 과연 웨이팅은 얼마나 있을까 걱정되었다.
11:20 정도에 도착했는데 웨이팅 명단에는 세 팀이 적혀있었다. 골든위크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웨이팅이 별로 없었다. 역시 오프닝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게 좋은 방법이다.
유명한 사람들이 적은 것 같은 싸인들이 많았다.
한국어로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좋았다.
나는 가라아게 3개가 들어있는 카레 우동을 시켰고, 동생은 소스를 뿌려먹는 붓카케 우동을 시켰다. 카레는 오래 끓인 것 같은 깊은 풍미가 느껴졌고, 면은 살짝 덜 익어서 통통하고 쫄깃했다. 나는 덜 익힌 면을 좋아해서 내 취향에 맞았다. 그리고 가라아게가 정말 끝내줬다. 겉은 바삭 안은 촉촉하여 씹을 때의 감각은 살살 녹는 듯하였고, 닭고기의 육즙이 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역시 맛집은 찾아갈만한 가치가 있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뒤 모리노미야 역에 내려서 오사카 성으로 향했다.
지도로 보기에는 모리노미야 역과 오사카 성이 그렇게 멀지 않아서 걸어가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부모님과 걸어가기에는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고, 약간 오르막이어서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족저근막염이 있어서 많이 걸으시면 발바닥이 아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아팠다. 이래서 부모님과의 여행을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다녀야 한다.
사실 이쪽 역에 내려서 가는 건 처음이었는데 식당이나 가게들이 있는 곳이 있었다. 오사카 성 근처에 이런 상가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한국인들이 아직 잘 찾지 않는 미지의 관광지가 아닐까. 골든 위크라 그런지 상가 근처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걸어가는 길이 멀어서 힘드신 아버지를 위해 의자에 앉아서 몇 번 쉬었다. 아버지는 힘드셔도 힘든 내색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먼저 쉬자고 얘기하셨으면 좋을 텐데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야 쉬셨다.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느낌에 미안하셔서 그랬을까. 반면 어머니는 엄청 잘 걸으셨다. 아버지의 페이스에 맞춰서 자주 쉬다 보니 어머니는 발이 근질근질하신 것 같았다. 아버지 발이 다 나으시면 좋을 텐데.
오사카 성에 도착! 했는데 세상에 네 번째로 와보는 곳이었지만 그렇게 긴 줄은 처음 봤다. 오사카 성에 들어가기 위해 티켓을 끊는 매표소에서 수십 미터가 되는 인파가 줄을 지어 서있었다. 애초에 오사카 성은 올라가고 내려오는데 계단을 이용해야 해서 부모님이 힘들어하실까 봐 들어가려고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긴 줄을 보니 아예 못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역시 골든 위크였다.
오사카 성 내부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럴까. 오사카 성 구경은 약간 허무했다. 오사카의 랜드마크이긴 하지만 한번 슥 쳐다보고 사진을 찍으니 끝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앉을 곳을 겨우 찾아서 20분 정도 쉬었다. 쉬는 곳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