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광주 비엔날레 - 충격적이었던 국군 병원 전시

by 박천희

미술을 좋아하던 대학 시절 마지막으로 봤던 2016년 부산 비엔날레를 마지막으로 비엔날레 전시는 보러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 @oottoogi 님의 게시물(https://www.instagram.com/p/CNSUMcBpbiZ/?utm_source=ig_web_copy_link)을 봤다. 전시 내용도 좋은데 국군 병원이라는 특이한 공간, 앞으로는 전시를 안 하고 건물을 헐 수도 있다는 말에 당장 내려가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국군 병원 전시는 인터넷 예매를 해야 꼭 볼 수 있습니다.

예약 링크 : https://www.gwangjubiennale.org/gb/commission.do


처음에 지도 앱으로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맸습니다. 아래 캡처처럼 화정역 2번 출구에서 직진하시면 왼쪽에 비엔날레 간판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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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으로 가는 길 양 옆에는 먼지를 새하얗게 뒤집어쓴 차들이 많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차가 방치되어 몇 월 며칠까지 차를 가져가지 않으면 폐차한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폐차할 돈이 없는 사람들이 이제 사용되지 않는 국군 병원 앞에 버리고 간 것이었다. 버려진 차들 사이를 걸어가니 기분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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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병원은 5.18 사적지 시설물 보호구역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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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헤매다가 1분을 지각했다. 다행히 도슨트 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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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병원 건물은 거대한 폐허였다. 2007년까지 사용했다는 이 곳은 시간이 2007년에 멈춰있었다. 건물의 유리창은 없거나 깨져있었다. 과거에 군인 뿐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시민들도 이곳에서 치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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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이에는 울창한 숲이 생겨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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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은 정말 날 것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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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당 앞에 붙어있던 종이이다.


전시는 도슨트 분의 설명을 다 듣고 개인적으로 따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미디어 전시도 있으니 모든 작품을 즐기고 싶다면 이른 시각에 예약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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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시는 시오타 치하루의 "신의 언어"였다. 저번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시오타 치하루 작가님의 전시를 보러 가지 않았는데 여기서 이 작품을 보니 후회가 되었다. 성당실에 설치한 이 작품은 수많은 실들이 여러 언어로 인쇄된 창세기 종이들을 공중에 부유하게 하고 있다. 국군 병원이라는 힘든 곳, 고문을 당하던 5.18 희생자들이 이 곳에서 바랐던 바람들을 생각하며 2주 동안 이곳에 작품을 설치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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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여러 동 중간을 관통하는 긴 복도는 서늘하고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폐허라는 공간이 주는 생경한 느낌이 신기했다.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은 여행 다닐 때 폐허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러시아 체르노빌을 가는 영상도 있다.(https://youtu.be/slZvAk74WwQ) '폐허를 가는 게 뭐가 재밌지?'라고 생각했는데 국군 병원 전시를 보면서 왜 폐허를 찾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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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이라는 작품이다. 모든 의족에는 양말, 신발이 신겨져 있었는데 의족을 사용하던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만두를 먹다가 브릿지로 덧덴 가짜 앞니가 빠진 적이 있었다. 가짜 이였지만 충격이 꽤 컸다. 이후 꿈에서도 이가 빠지는 꿈을 자주 꿨다. 가짜 이가 빠지는 걸로도 이 정도 충격이었는데 다리가 잘려서 의족을 사용하신 분들은 오죽하셨을까. 의족을 사용하는 물리적인 불편함보다도 다리가 없어지는 그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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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들의 인터뷰 영상도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다 못 보았다. 부모님 뻘 되는 분들이 이런 일들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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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가의 "오바드 V"라는 작품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국군 병원의 층고를 고려해 2개로 분리하여 전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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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작가의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이다. 故채의진 작가가 만들었던 지팡이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셨다. 故채의진 작가는 문경 석 달 마을의 학살 현장에서 어머니를 포함하여 9명의 가족을 잃으셨고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학살 진상 규명 운동에 앞장서셨다. 수많은 지팡이들을 만드셨던 작업은 "슬픔과 분노, 고독과 저주로 더럽혀진 삶에 맞선 쓰라린 투쟁과 통한의 몸부림" 이셨다고 한다.


전시 초반부에는 어두운 곳에 있는 지팡이들이 있는 방, 검은 암막을 들추면 수술대를 연상하는 하늘색 천위의 지팡이들과 밝은 조명이 있는 곳이 등장한다. 어두운 곳에 있었던 지팡이를 치유한다는 의미로 작업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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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환 씨의 "유행가 : 임을 위한 행진곡" 작품은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차용했다. 광주 시내의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와 글자에 머리카락이 새겨진 보도블록을 받아서 작품에 활용하셨다. (지금은 머리카락은 없어졌다.) 티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식물이 화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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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 작가님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이 작품은 운 좋게 작가님이 계셔서 작가님께 직접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데이지 꽃은 뿌리부터 꽃잎까지 치료용으로 쓰이는 식물이라서 이 식물을 작품에 사용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은 5.18 희생자 분들의 인터뷰를 녹음해서 들었는데 나이가 있는 분들의 목소리로 어릴 적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대역으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했다. 작품 끝의 의자 위 화분에 가면 인터뷰 음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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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작업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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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분께서 아래 사진에 있는 흔적이 무엇일까요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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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뗀 흔적이라고 하셨다. 마이크 넬슨 작가가 국군 병원에 있는 거울들을 떼서 모아 작품을 만들 때 썼다고 하셨다. 그 작품은 국군 병원을 나와 맞은편 교회 건물에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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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광주 비엔날레 통틀어 최고의 작품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하는 분위기에 헉하고 숨이 멈췄다. 거울은 국군 병원에서 쓰던 거울이라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거울 사이를 돌아다니며 소름이 돋았다. 눈물이 날 뻔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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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왼쪽에는 뒤쪽 방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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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이런 이상한 낙서가 있는 방이 나온다 ㅋㅋ 꼭 들어가서 구경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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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병원을 배회하면서 무서운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남들이 나를 보는 모습이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군 병원의 거울들은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 거울을 교회에서 재편성해 기시감을 들게 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병원에는 재밌는 낙서, 철거하지 않은 흔적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건물을 철거하거나 누가 훔쳐가면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로 귀한 자료들이었다. 카메라 셔터들을 연신 누르며 건물의 흔적들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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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모두 보고 서울곱창에서 곱창구이를 먹었다. (내돈내산 입니당) 간장 베이스인데 불맛도 나고 곱창이 커서 맛있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광주지역 소주인 잎새주를 못 마셔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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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의 전시도 봤는데 재미있었지만 국군 병원 전시만큼 임팩트는 없었다. 국군 병원 전시는 전시 장소가 주는 의미와 느낌이 너무 좋았다. 여태껏 봤던 전시 중 가장 좋았던 전시 3개 안에 손에 꼽힐 정도였다. 앞으로 국군 병원이 철거된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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