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스완"이 개봉했던 때 나는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오셨고(왜 올라오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cgv 영화관에서 블랙 스완 영화를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본 지 9년이나 지나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예술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뤄 완전 내 취향인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어머니는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셨고 나는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하기로 약속이 돼있어서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는 항상 가던 왕십리의 지하 1층에 있던 PC방이었다. 그 PC방은 친구 여러 명이 다 같이 모여서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빈자리가 많은, 인기가 없던 PC방이었다. 나는 그 당시 대학 동기 친구들과 "카오스"라는 게임을 정말 열심히 했다. 카오스는 내 인생 최고의 게임이었다. 공강 시간이나 주말에도 게임을 했고 가끔은 밤새 게임을 달리기도 했다.
친구들은 이미 PC방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PC방을 들어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슬픈 생각이 났다. 눈물이 너무 나서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혹시 누가 볼까 봐 숨을 죽이며 엉엉 울었다.
내가 운 이유는 뜬금없게도 '어머니의 죽음'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본 영화 블랙 스완을 떠올리자 어머니의 죽음이 생각났다. 그런데 영화의 주요 장면이나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다만 영화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굉장히 생생했다. 그 장면은 예술적이면서도 무서웠고, 잔인했고, 슬펐다. PC 방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고, 나는 조금 전 헤어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라 친구들이 기다리는 PC방 앞에 앉아서 펑펑 울고 말았다. 물론 다 운 이후 PC방에 들어가 친구들과 게임은 열심히 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얼마나 많이 상상하는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굉장히 많이 무서워한다. 얼마나 무서워하냐면 가끔 자기 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잠이 다 깨버린다. 머릿속에서 시커먼 폭풍이 치고, 등 근육이 바싹 오므라든다. 끝이 없는 절벽에 뛰어들어 무한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지금 느끼는 감각들, 머릿속의 생각들이 없는 상태란 어떤 것인가 상상을 하면 소름이 끼치고 무섭다. 인생에서 말년인 시기가 되면 두려움이 너무 커져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힘들어지진 않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죽음을 무서워하는지 궁금해져서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 너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어때?' 내가 예상한 대답과 다르게 그 친구는 '난 죽음이 그렇게 무섭진 않아.'라고 했다. 그다음에 나온 대답이 더 충격이었다. '너무 오래 살기 싫어. 적당히 살다 죽으면 좋겠어.' 나는 죽음 뒤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두려워서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나와는 180도 달랐다.
죽음이란 것은 지금껏 태어났던 9백억 명의 사람들 모두가 피할 수 없었던 자신의 삶의 끝이기에 누구든 나처럼 죽음을 무서워할 줄 알았다. 죽음이란 것은 극도로 무서워서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 그 두려움을 잠시 잊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뉴스 기사를 읽다가 연예인들이 많이 겪는다는 '공황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황'이란 심장이 뛰고, 몸이 경직되고, 호흡이 가빠지는 현상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될 때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공황 장애는 이러한 공황의 빈도수가 많아지고, 공황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심할 경우 발작까지 일어나 당장 응급실에 전화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힘든 상태이다. 공황 장애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내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약한 공황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전 세계에 신하들을 보냈던 것처럼 죽음에 대한 집착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와의 대화와 뉴스 기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내가 느낀 공포는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하는 일이 적어졌다.
사람은 누구든 살다가 죽는다. 내 부모님도, 내 친구들도, 내 애인도 예외는 아니다. 하헌진 씨의 노래처럼 우리는 "언젠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함께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주고, 기념일을 챙긴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만 해도 남은 생이 모자란데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힘들어했던 내 모습이 바보 같았다.
에드워드 영은 "태어난 순간 죽음은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뱃속을 나오며 내뱉는 첫 울음소리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 한번 사는 인생 잘 살아보고 싶을 것이다. 무서운 죽음 앞에서 나약해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겠지만, 어떻게든 계속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