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등산이 좋아지다니

아름다운 용마-아차산 코스

by 박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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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연말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여행을 갈지 찾아보다가 제주도가 후보에 올랐다. 같이 가는 여자 친구가 한라산에 안 갈 거면 제주도를 안 가겠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럼 제주도 안 가겠네."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제주도 항공권을 끊었다. 한라산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한라산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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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2m 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재작년에 회사에서 북한산의 족두리봉을 올라갔는데 족두리봉의 높이는 370m였다. 족두리봉을 갔다가 다른 봉우리도 갔긴 했지만, 북한산 봉우리의 정상을 갔다 오는데도 힘들어서 한나절이 걸렸는데 한라산을 얼마나 힘들까? 게다가 겨울에 한라산을 올라가는 건 훨씬 춥고 힘들겠지.


우리는 한라산에 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 처음부터 너무 어렵진 않은 초보자도 올라갈 수 있는 산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집 근처에 아차산이 있었다. 아차산을 검색해보니 초보자가 올라가기에 괜찮고, 용마산-아차산 사이 능선에 둘레길이 있는데 걷기에 어렵지 않으면서 예쁜 길이라고 한다. 나와 여자 친구는 용마산-아차산 코스로 가보기로 했다.


등산을 가기 전엔 배를 든든히 해야 하는 법, 용마산 근처에 "키미노 돼지국밥"이라고 하는 부산식 돼지국밥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하길래 찾아갔다.

20191026_131832.jpg 마산 총각이 끼리주는 돼지국밥

처음 서울에서 순댓국을 먹었을 때는 너무 충격이었다. 부산과 다르게 머리 고기를 쓰고, 국물도 맛도 다르고, 향신료도 다른 것 같았다. 서울의 순댓국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고향 부산의 돼지국밥을 더 좋아한다. 왜 부산식 돼지국밥은 서울에 파는 곳이 없는 걸까 했는데, 요즘 속속 부산식 돼지국밥을 파는 곳이 서울에도 생기고 있다. "멀리 부산까지 가지 마시라고 제가 올라왔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가게 문구처럼, 부산 돼지국밥을 서울에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이런 가게들이 참 감사하다. 돼지국밥과 수육백반을 시켰는데, 정말 끝내줬다. 부산에서도 오래된 돼지 국밥집에서 나오는 면 사리도 있었다. 반찬도 너무 맛있었다. 가게 한켠에는 숙성하고 있는 깍두기들이 보였는데, 물렁물렁해질 정도로 잘 익은 달달한 깍두기도 정말 맛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먹으러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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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게 배를 채우니 이대로 집에 가서 배를 두드리며 낮잠을 자고 싶었지만 원래 목표인 용마산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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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은 산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경사가 가팔랐다. 높은 경사 길을 오르다 보니 벌써부터 힘이 들었다. 용마산을 자주 가봤던 여자 친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고 얘기했는데 꽤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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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등산 코스는 용마산 정상을 찍고 아차산 정상으로 걸어가 아차산 역 근방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아차산 정상을 찍은 후 내려오는 길이 여러 개가 있었는데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하였다. 나중에 내려올 때 알게 되었는데 갈림길에서 표지판에 길이 잘 적혀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용마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 날씨는 약간 흐리고 안개가 뿌옇게 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산을 올라가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가장 좋은 건 상쾌한 공기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시원한 생수가 내 폐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바위 절벽이 보이는 용마산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잎사귀를 가진 나무도 보고, 개구리가 올라탈 것 같은 귀엽고 둥그런 식물도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걸어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조그마해진 집들과 저 멀리 북한산까지 보이는 경치가 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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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등산을 이렇게 좋아한다는 게 신기했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를 따라갔던 구덕산이 떠올랐다. 어릴 땐 등산보단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게 더 재밌었다. 등산을 가도 별 감흥이 없고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싫었다. 나도 드디어 아재가 된 것인가. 나이를 먹으니 등산이 좋아진 것 같았다.


왜 나이를 먹으면 등산이 좋아지는 걸까? 사람의 취향이란 계속 바뀐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컴퓨터 게임에 싫증을 느껴서 새로운 즐길 거리인 등산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등산도 몇 년이 지나면 싫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도 타이밍이 중요해서 좋아하게 되었을 때 마음껏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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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가 되었다.
송전탑이 산에 있었는데 아래에서 찍으니 이렇게 신기한 사진이 찍혔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서 등 뒤로 멀어지는 도시가 보였다. 속세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왜 절이 산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힘들고, 약간은 경사가 있었던 코스로 올라가다 보니 나의 영혼은 등산에 몰입하여 잡생각이나 평소에 했던 걱정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역시 마음이 어지러울 땐 몸을 힘들게 해야 하는 법이다.


얏호 용마산 정상 도착! 해발 348m라고 적힌 비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상의 비석 옆에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을 재봤는데 걸린 시간이 너무 충격이었다. 45분 만에 올라왔다. 체감은 힘들어서 1시간 30분은 걸은 것 같았는데. 힘들 때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나 보다.


해발 348m의 산을 오르는데 45분이 걸렸는데 제주도의 한라산의 높이는 1950m이니까 지금 오른 것의 5배 넘게 올라야 하는구나. 그럼 대략 올라가는 데만 쉬는 시간도 합쳐서 대략 5시간은 걸리겠지. 왕복하면 10시간. 한라산은 정말 높긴 높구나.


우리는 용마산에서 아차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길로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은 "서울 둘레길"에 포함된 코스였는데 높낮이 변화가 적어서 걷기에 힘들지 않고, 능선에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운 길로 유명했다. 또한 아차산성이나 보루들 같은 고구려 문화재가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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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을 구경하는데 굉장히 크고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 아름다운 나무가 나를 반겨주었다. 산성은 일부가 남아있었는데 마치 공원처럼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고구려 시절에는 이렇게 높은 산을 매일 교대근무를 하며 지켰다는 것인가, 한겨울엔 또 얼마나 추웠을까 하며 산성 근무자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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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은 굉장히 허무했다. 아차산 정상은 작은 나무 막대에 글이 적혀있었다. 그렇지만 산 정상이 굉장히 넓은 평지여서 올림픽 공원의 언덕이 산 정상에 있는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아차산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오면서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따뜻한 노란 햇빛이 나무 사이를 비추고 바람에 춤을 추는 나뭇잎들, 저 멀리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한강도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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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해맞이 공원에는 "꿈과 희망"이라는 비석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 7:46에 비석이 세워졌다고 적혀있었는데 적힌 시각은 일출 시각인 것 같았다. 새천년이 온 지 벌써 20년이 되었고 내년이면 벌써 2020년이네. 비석 뒤에는 "광진의 님이시여 새 천년에는 모든 소망 이루소서."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의 안녕을 비는 말은 언제나 좋은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모든 소망 이루시길 바란다.


한편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해서 골아떨어졌다. 팔다리도 쑤셨다. 제주도 여행 때 한라산 올라갈 수 있을까? 12월이라 추울 텐데. 그렇지만 용마산에서 봤던 경치도 좋았는데 한라산의 경치는 더 좋겠지? 과연 우리는 제주도 여행 때 한라산을 올라갈 수 있을까. 일단 여행 전에 용마산보다 더 높은 다른 산들도 올라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