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공연

카페 언플러그드에서

by 박천희

첫 직장, 첫 면접, 첫 키스, 첫 연애 등 누구에게나 처음은 소중한 추억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들은 처음 이후엔 비슷한 경험의 반복이다.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겪을수록 충격이나 감동은 작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처음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게 남는다.


뮤지션이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첫 번째로 공연한 날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첫 공연은 2015년 3월 8일이었다. 카페 언플러그드에서의 오픈 마이크 공연이었다. 오픈 마이크 공연이란 신청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공연을 말한다. 오픈 마이크 공연 신청을 받는 공연장이나 카페가 서울에 몇 군데 있다.


그 당시 카페 언플러그드의 오픈 마이크 공연을 신청하기 위해선 직접 카페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매달 정해진 날짜부터 신청을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일요일에 신청하고 싶어서 신청 날짜에 맞춰서 찾아갔다.


언플러그드 카페는 신촌에 있었다. 처음 찾아가 보는 카페였다. 이곳은 특이하게 카페에 있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고 친구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카페에는 귀엽고 넉살 맞은 리트리버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카페는 여유로워 보였다.

20150211_142127.jpg
20150211_142133.jpg

오픈 마이크 신청하는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청을 했었다. 나는 친구들이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도록 일요일로 신청했다. 그땐 무슨 예술병이 있었는지 신청서에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 왜 그랬을까.


이 공연을 위해 했던 연습 양이 지금까지 했던 공연을 위한 연습 양 중 가장 많았다. 공연 한 달 전부터 매일 두세 시간씩 발성과 기타를 연습했다. 나의 인생 첫 공연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공연을 보러 오기로 한 친구 중 한 명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드디어 공연 날이 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름 멋있다고 생각한 옷들을 골라 입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던 것 같다. (아니면 내 기억이 미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착각한 거일 수도)


20150308_180704.jpg

총 6팀이 공연을 했다. 오픈 마이크에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그것은 뮤지션들은 자신의 공연 끝났다고 자리를 뜨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끝까지 봐주는 것이다. 카페 언플러그드에는 규칙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공연 순서를 미리 정하지 않고, 한 사람이 끝날 때마다 제비뽑기로 다음 사람을 뽑는 것이다. 공연 전에 순서가 정해져 있으면 관객도 지인의 공연 순서에 맞춰 왔다가 끝나면 나가기 때문에 관객석이 휑해질 수 있다. 뮤지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고, 관객도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규칙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팀까지 공연을 끝냈는데 공연을 보러 오기로 한 친구들이 아직 공연장에 도착을 못했다. 다음 차례 때 제비뽑기로 내가 걸리면 친구들이 내 공연을 못 볼 수도 있었다. 공연을 보러 오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뮤지션의 공연이 끝나고 제비뽑기를 했는데 과연 그 결과는?


제비뽑기 결과 다행히 다음 차례는 다른 뮤지션의 차례로 결정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내 공연 전에 친구들이 도착할 수 있었다.


내 공연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을 했다. 우연히 공연 날 꼴지피디님께서(https://www.kkolzzi.com) 공연을 촬영하러 오셨는데 덕분에 고화질의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공연을 보면 긴장을 해서 그런지 노래들의 속도가 엄청 빠르다. 원곡의 1.5배 속도는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오글거려서 차마 영상을 보다가 껐다.)


공연 때 중간에 가사를 실수했다. 그런데 공연 분위기가 좋아서 사람들이 웃어줬다. 나름 귀엽게 봐주신 것 같다. 긴장되고 어리숙한 첫 공연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귀엽고 풋풋해 보였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 안 나는데 페이스북 페이지의 글을 찾아보니 이런 글이 있었다.


20200510_231029.jpg 정말 귀엽다

좋았던 기억은 미화된다. 지금 저 글을 읽어보면 4곡으로 15분을 했다고 하는데 내 느낌엔 다섯여섯 곡을 30분 동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 공연했을 때는 공연장이 굉장히 컸던 것 같은데 다시 찾아가 보니 내 기억보다 작았다.


공연 영상(https://youtu.be/DoPlNtuB3EU)은 지금은 도저히 재생할 수가 없다. 너무 오글거린다. 연주는 너무 빠르고 시선 처리는 긴장되어 관객을 못 쳐다보니 어리숙하다. 목소리도 힘이 없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공연이기에 그런 아쉬움들도 추억이다. 그런데 이 영상 때문에 회사에서 어떤 차장님이 "천희 씨, 유튜브에서 공연 영상 잘 봤어요."라는 말을 듣고는 식겁하기도 했다.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까 봐 얘기드리는데 잘 보이고 싶었던 친구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우리는 다 같이 홍대 조폭 떡볶이에서 떡볶이를 먹고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어떤 친구는 경기도 이천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었다. 공연을 보러 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를 보러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첫 공연이 외로웠을 것이다.


이곳에서 공연을 한 이후 유튜브 영상을 보시고 홍대의 다른 카페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첫 공연은 역사적이었지만 그 이후의 공연들도 모두 소중했다. 요즘은 공연을 쉬고 있다. 열심히 1집 앨범을 녹음하고 있다. 앨범이 발매될 즈음이면 다시 공연을 시작해야지. 더 많은 공연을 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