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한 May 23. 2016

느릿느릿, 그리고 희망을 터벅터벅

 전역한지 이제 딱 열흘차. 지겨운 군복을 1년 9개월 만에 벗어던지고 나는 다시 사회로 나왔다. 홀가분했다. 통제로 가득했던 곳에서 자유가 가득한 곳이라니. 위병소 밖을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젠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젠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50년 만에 밖으로 나오게 된 브룩스가 된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1년 9개월 동안 했던 생각은 여전히 물음표에 머물러 있었다. 스물다섯. 남들보다 약간 늦은 입대와 전역. 남들보다 잘하는 건 없는 것 같은데 점점 내가 잘난 것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었다.

 

 나는 전역 후에 허둥거릴 새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입대 전 했던 아르바이트를 연락이 닿아 다시 하게 되었다. 하던 일이라 쉬울 줄 알았지만 역시 남의 돈 벌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군인이었을 때는 사회에서는 짜증 나면 때려치울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시작 이틀 만에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는걸 깨달았다. 되돌아오지 않는 인사와 아르바이트생에겐 필수 덕목인 친절을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베풀면서 말이다. 하루 근무가 끝나고 나면 오늘도 잘 버텼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내일은 일이 조금은 덜 힘들었으면 하고.


 군복을 입고 다시 벗을 동안 우리나라는 어느새 '헬조선'이 되어 있었다. 취업은 고사하고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바쁜 나날들. 부모보다 월급이 적은 세대라는 타이틀. 비리는 당연하고 충격적인 범죄의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는 세상. 사람들은 점점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혐오'하게 된 듯했다. 혐오스러워도 어쩔 수 있나. 이민을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열심히 살 수밖에. 


 나는 아직 세상을 혐오하진 않는다. 되도록이면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풀숲에 핀 한 떨기 꽃,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 작은 친절에도 감사해하는 어른들. 나 또한 작은 것에도 미소 짓고 감사해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만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혐오스럽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나 자신이 그런 것들을 견뎌내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혐오를 '혐오'한다. 


 모든 게 한 발씩 느린 스물다섯의 사내는 꾸역꾸역 그리고 느릿느릿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벅차긴 하다. 겨우 한 발을 내딛을 쯔음, 다른 누군가는 두세 발자국씩 성큼성큼 걷는다. 보고 있노라면 참 맥 빠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걷는다. 느리니까, 뛸 수가 없으니까 열심히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1등은 못하더라도 '참 잘했어요'같은 도장이라도 찍어주지 않을까?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잘하고 있다고 어깨라도 두드려주지 않을까? 별 시답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는 것들을 희망하며 나는 다시 힘을 내서 걷는다. 내일은 좀 더 빨리 걸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