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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한 May 25. 2016

내 맘과 같지 않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그래서 아픈 마음을 알기에.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역시나 기대와는 달리 세상은 제멋대로 돌아간다. 제멋대로 돌아가다 보면 내 맘과 똑같은 순간들이 있을 법도 한데 어찌 그리 나를 실망시키는지 원망스럽다. 나는 좀 행복하면 어디가 덧나나라는 푸념이 내가 그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전부라니 애석하기까지 하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많다. 아주 긴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상은 그래 왔다. 잘하고 싶었다. 남들에게 뒤쳐지기 싫었고 손가락질받기 싫었다. 남들보다 잘나 보였으면 하는 어쩌면 헛된지도 모르는 욕심 또한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럴 수는 없다며 코웃음 쳤다.



 내 인생에서 최초의 사건이자 실패작이었던 수능. 나는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보자마자 내가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멈추지 않는 눈물과 고통, 굴욕감과 패배감과 같은 씁쓸한 기억이 가득했던 것은 기억난다. 그 날 난 눈물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엄마를 끌어안으며 꺼이꺼이 토해내었다. 당연히 잘할 거라고 믿었던 오만함에게 배신당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아프게 깨달았다. 



  행복하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갈 때, 조금은 서글프다. 지금 나의 모습이 행복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수두룩하다. 케세라세라의 정신을 본받아 어찌어찌 살아가고는 있는데 세상은 '어쭈, 요 놈 봐라'하면서 더욱 못되게 구는 듯하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오늘도 갖가지 SNS에는 모두가 행복한 모습들을 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도 행복한 모습을 올려보지만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뭔가 공허하다. 올릴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막상 올리고 나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자꾸 드는 건 순전히 기분탓일까. 행복한 모습이 가득해 보이는 나보다 별 일 없는 것 같은 타인의 모습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자격지심인지, 아니면 정말 남들이 더 행복한 건지 알 턱은 없지만 확실한 건 자꾸만 빠져드는 우울감. 그리고 자꾸만 무너지는 자존감.



 마음에 자꾸 생채기가 날 때, 우리는 그 자리가 자꾸 신경 쓰인다. 나을만하면 쓰라리고 혹여나 흉이 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생채기가 딱지가 되고, 딱지가 떨어져 다시 온전한 새살로 돌아갈 때까지 생채기가 있던 흔적을 쳐다본다. 그리고는 아팠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아, 내가 이래서 아팠었지'라며. 건드리지 않았으면 진작에 나았을 상처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다시금 되새기며 아픔을 상기시킨다. 어차피 다 낫게 되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생채기가 있던 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면서.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생채기들로 우리는 너무 자주 아파한다. 



 물론 아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파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왔을 때 무사히 잘 보낼 수가 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은 길수록, 그리고 깊을수록 좋다. 가슴이 터질 듯이 목놓아 엉엉 울어도 좋고 나를 위해서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어도 좋다.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다만 따가울 뿐인 상처가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별 일 아닌 듯 흘려보내자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엄청난 '유리멘탈'의 소유자이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기분이 가라앉는다. 스트레스가 가만히 있어도 다닥다닥 붙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겐 따가운 상처를 무심하게 넘길 필요가 있다. 일종의 생존법인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씩 따가운 상처를 지나치지 못할 때가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흘려보낼 수 있는 아픔의 잔가지들이 고통을 먹고 자라 어느샌가 나의 세계를 뒤덮는다. 뒤이은 혼란. 그건 온전히 내 몫이다. 그래서 더욱 덤덤하게 많은 일들을 흘려보내려 한다. 그래야 나를 갑갑하게 만드는 것들 사이에서 숨을 뱉어낼 수가 있으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내 맘 같지 않은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의 마음마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날도 있다. 위로가 더이상 위로되지 않는 그런 날들과 맥빠지는 날들의 연속.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너는 그렇지 않을 자격이 있는데. 너는 별 것 아닌 것에 흔들릴만큼 별 것 아닌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너를 뒤흔드는 많은 것들에 더이상 흔들리지 말자.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지만 가끔은 가슴벅찬 일들로 너를 황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이 나를 뒤덮고 있노라고 주눅들지 말자.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 거라는 주근깨 소녀 빨간머리 앤의 말처럼 너에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러한 것들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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