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졌다. 정확히는 또... 떨어졌다. 살얼음판 같던 매 관문들을 조심조심 딛으며 문 앞까지 걸어왔지만 나의 간절한 바람을 듣지 못했는지 아니면 들은 체도 하지 않은 건지 기어이 눈 앞에서 문이 닫히고 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엇인가 되뇌이게 된다. 처음엔 그저 운이 없었으려니, 준비가 부족해서였겠거니 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걸어갈 채비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다. 딱 그만큼의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넘지 못할 만큼의 능력을 가진, 딱 그만큼의 사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옛날을 그려보게 되는데 그래도 나름 어렸을 땐 남들보다 똘똘한 아이였더랬다. 누구나가 다 그랬겠지만 그 누구나 중의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낼 줄만 알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눈을 떠보니 다들 저만치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바라만 볼뿐이었다.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내 발걸음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발자국 하나를 쉬이 내딛지 못했다. 지금의 이 생활이 녹록지 않듯이 돈을 벌게 되어도 그 생활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보더 더 힘들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지만 선택지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 하나밖에는 없다. 어쩌겠는가. 이건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가 없는 일인데. 고배를 마실 때마다 들이켰던 맥주는 여전히 쓰고 나의 지금도 쓴맛으로 가득하다. 벌컥벌컥 들이킨 맥주탓인지 아니면 기약없는 나의 미래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지끈거린다. 푸념은 늘어놓을수록 길어지고 절망 또한 길어진다. 오늘은 이쯤하고 자야지. 하루는 너무 짧고 이 진빠지는 생활은 너무도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