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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희씨 Dec 13. 2017

육아 107일, 사랑을 깨닫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실감하다

 딸아이를 처음 본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고통으로 거친 숨을 들이내쉬고 있을 때, 담당 의사가 내게 외쳤다.


자~ 여기보세요, 아기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딸램과의 첫만남.

 비교적 짧은 진통을 겪었음에도 숨을 거세게 내뱉고 마시다보니, 목이 말라 있어 침을 꼴깍 삼켰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어렴풋이 아이의 형체를 확인하고서 머릿 속이 하얘진 채 그대로 뒷통수를 침대 위에 박았다. 가까스로 숨을 고르고 있을때, 간호사가 아이를 초록색 싸개에 말아 내 코 가까이 붙여주었는데 그제서야 출산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딸아이의 입술은 빨갛게 물들어있었고 참 좋은 향기가 났다. 주변 출산 선배들로부터 듣기로는 태어난 직후에는 양수에 불어있어 '이게 내 자식인가' 싶게 안 예뻐 보일 수도 있다던데,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 너무 예쁜 아이였다. 실제로 내가 딸아이에게 제일 처음 한 말도 "예쁘다, 아 예쁘다."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백일이 다 될때까지 아이가 예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출산 2일째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아기를 곁에 둘 수 없을 정도라 친정 엄마 앞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집으로 와서도 모유수유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잠을 못자는 것은 기본이었고 여기저기 몸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아이가 예뻐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남편에게도 여러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의 표정은 굉장히 심각했다. ㅋㅋ 아마 남편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아이 낳은지 한달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리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절감하게 됐다. 그 우울감이 예상보다 컸다. 임신 중에도 장래 계획을 하며 그 점을 짐작은 했지만, 절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일의 강도는 작지 않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일을 통해 느낀 성취감이 더 기에 말 그대로 일에 빠져서 살았다. 내 능력은 신장되어갔고, 인정을 받으니 일터가 즐거웠는데 이제 몇년간 할 수 없겠다는 현실에 봉착하니 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쉬는 동안 후임들은 내 자리로 올라올거고, 복귀하면 나는 어벙벙한 초짜로 돌아갈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백일 준비도 사실 정말 의무감에 진행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드폰 검색을 통해 매일 백일상을 찾아보며 짜증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하면서도,

'지나가면 잘했다는 생각하게 될거야~'

'첫 아이잖아.'

'그것도 다 한때야.'

'OO이는 아이 둘 보면서도 다 하잖아, 왜 못해?'


등등의 주변 조언과 내면의 소리가 뒤섞여 떠밀리듯이 준비를 했다. 여느 초보맘들이 그렇듯 나도 백일상 대여를 통해 백일을 치루었는데 본래 손재주가 없다보니 배송된 물품을 차려 올리는 것만으로도 멘붕이 왔다. 다행히 멘탈을 붙잡고 업체의 도움으로 상차림은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백일날 딸램에게 배냇저고리를 입혀봤다. 터질듯 꽉 맞는 모습을 보며 딸아이의 성장을 실감했다.


 그렇게 달려온 백일이었다. 주변인들은 나의 건강과 감정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아이가 참 순하다'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하루종일 붙어있어봐라, 세상에 순한 아기가 어디에 있나. 속으로 그렇게 톡톡 받아치며 마음을 삐죽거렸다. 아이가 세상 무엇보다 예쁘지 않느냐는 친정엄마의 말에도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느낌에 고립감도 컸다.  


 100일이 갓 지나고 간밤에 수유로 지친 나를 위해 아침에 남편이 아이와 잠시 외출을 했다.그런데 아이 머리에 모기 두 방을 물려온 게 아닌가. 남편은 아이를 어깨 위로 안고있어 모기가 피를 빠는지 몰랐단다. 두 놈이 포식을 했는지 한 놈이 두끼를 먹었는지, 아이 머리에 선명한 붉은 자국에 어찌나 속이 상하는지.... 애써준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할 수 없어 농담하며 넘겼지만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정도로 속은 안달이 났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모유를 짜서 여러차례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는데 물린 첫날이라 그런지 별 효과는 없어보였다. 얼마나 가려울까, 모기가 옮긴 균은 없을까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속상한 맘에 남긴 사진. 이노무 모귀새퀴들..


 그렇게 모기에게 물린 상처에도 종종거리는 나를 보면서 그날, 처음으로 아이에 대한 내 애정의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좀 우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없을까....' '이렇게 한 사람의 감정이 요동치면서 키워야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굴고, 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바닥을 치는 나 스스로를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는데, 그만큼 이 아이에게 나는 무장해제인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인지되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간 힘들기만해서 생각 못했던 내 자식에 대한 정이 비로소 느껴졌다. 아직 초보부모라 여러 선배 부모들의 말을 다 알기는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내가 딸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게될지 미지수라는 것. 매일매일, 그 깊이와 폭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 아닌 누군가가 잘 되는 일이 내 삶의 막대한 기쁨이 되는 부모의 사랑을, 부모의 마음을 날마다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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