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매일 세 시간씩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서 수업을 받는다. 스쿨버스를 처음 타는 둘째가 울면서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했는데 둘째는 버스 가까이에 서서 한 손으로 창문을 두드리며 다른 손을 힘차게 흔드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버스에 함께 타고 있는 다른 아이들만을 유심히 살폈다. 천천히 속도를 올리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스쿨버스를 바라보면서 내 아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라니 더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아이는 자신을 유치원생처럼 배웅하는 나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버스 창가에서 약 2초간 손을 들어 보인 다음 고개를 돌린다. 그럴 만도 한 게 딸아이는 작년에 유치원생부터 3학년까지만 다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학년, 5학년만 다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학제가 왜 이런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의 분리는 딸아이와 둘째가 같은 스쿨버스 안에서 서로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대화를 다른 아이들과 나누거나 그런 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엿듣거나 하는 일을 막아주었다.
월요일 오후 둘째가 학교에서 친구에게 받은 쪽지를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둘째 친구 엄마가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면서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 보낸 것이었다. 둘째는 여태껏 학교에서 사귄 친구와 누군가의 생일 파티가 아니고서는 따로 만난 적이 없다. 엄마로서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로 육아를 하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우리가 얼마 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지 몰라 설렜다. 나는 당장 둘째 친구 엄마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모든 평일 오후에 시간이 남아돌아서 미치겠다는 심정으로 우리는 아이들 학교가 끝난 오후 시간이면 어느 날에나 플레이 데이트를 할 수 있다고.
아이 친구의 이름이 인도 아이가 아니라 나는 둘째에게 친구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 둘째는 친구가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말을 안녕, 잘 자, 엄마 이렇게 세 개나 알고 있는 일본 사람이라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둘째에게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면 오하이오,라고 인사하라고 가르쳐줬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노는 동안 아이들 곁에서 엄마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냐고 물어볼까, 얼마 전에 다녀온 쿠사마 야요이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볼까.
둘째 친구의 집은 우리 동네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집 앞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있는 둘째의 친구와 여자를 운전석에 앉은 채로 보자마자 나는 그들이 일본 사람이 아닌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고민해봤는데 두 사람의 생김새 때문은 아니고 그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우리를 맞이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생활이 뻔하고 아이들이 서로를 좋아하니 나는 여자가 낯설어도 어색하게 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말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여자의 아들은 토요일마다 축구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토요일마다 온라인으로 한글학교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말도 할 수 있나요? 듣고 이해는 하지만 한국말은 하지 않아요. 한글을 읽지만 뜻은 모릅니다.
여자는 뉴저지에서 나고 나란 중국인, 여자의 남편은 중국 이민 5세대라고 했다. 여자의 부모와 언니는 중국말을 하지만 자신은 할 수 없고, 남편과 남편의 부모님, 남편의 조부모까지도 중국어를 모른다고 했다. 당신 아들이 내 아들한테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했대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다 믿으면 안돼요.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던 여자의 남편이 집 앞 잔디밭으로 나와 나에게 인사했고, 나는 100년도 더 전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중국 사람들이라면 그냥 미국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다. 우리가 집에 가고 나면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에게 너 일본 사람 아니야, 중국 사람이야, 혹은 미국 사람이라고 바로 잡아주었을까. 아니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가 가방을 피아노 옆에 내려놓고 오늘 보조 선생님이 자신과 같은 반 중국 남자애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둘이 남매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래, 그래서 기분이 나빴어? 아니, 우리가 남매이면서 같은 학년이려면 쌍둥이어야 되는데, 우린 쌍둥이가 아니라고 크게 말했어. 우리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 나는 그랬구나, 하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딸아이가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엄마 화났어?라고 물었다. 아니, 그냥 그 선생님 멍청이네. 왜? 너네가 남매인 게 그렇게 궁금하면 너네한테 물어보기 전에 출석부를 보면 되잖아. 아.
우리는 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이지, 하면 딸아이가 난 캐나다 사람인데, 하고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남편이 그래, 우리는 캐나다 사람이지, 한다. 그러면 둘째가 자신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므로 한국어 사람이 아니고 영어 사람이라고 한다. 있잖아, 나는 외계인이야. What? I am an alien.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다. 이제는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냥 한국어 사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