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려고 세면대와 욕조 사이에 서서 입고 있던 윗도리를 장인의 솜씨로 벗겨내 바닥에 떨어뜨리며 버리고 싶은 건 네가 아니었어, 중얼거렸다.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수의 목소리까지 떠올릴 수 있었지만 노래 제목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변기 위에 올려 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유튜브 뮤직 검색창에 그대로 썼다, 버리고 싶은 건 네가 아니었다고. 그대로 있어주면 돼, 장필순. 그대로 있어주면 돼, 김장훈. 장필순이 부른 그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그 자리에 서서 감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다 듣자 띄엄띄엄 생각나던 노래 가사가 내 안에서 모두 되살아나 어디서나, 아무 때나 목놓아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샤워하는 내내 샤워기에서 내리는 물을 맞으며 한 곡 반복의 운명 속에서 계속되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버리고 싶은 건 네가 아니었어. 버려지는 건 내가 되어줄게. 이렇게 그냥 버려둬, 오지 마. 너와 나의 구분이 어려워, 한 사람이 되어버린, 두 개의 다른 노래 같았다.
사람이 온전히 혼자되었을 때 무슨 짓을 하는지가 나는 언제나 정말이지 미치도록 궁금하다. 그걸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사람만큼 나를 매혹하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여전히 쓸데없는 상상 속,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홀로인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세상 어딘가 부디 존재하기를 바란다. 이런 나에게 결혼은 영원히 계속될 몰래카메라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남편이 샤워하러 들어간 화장실에 숨어들어 샤워하는 남편이 혼잣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노래가 아니라 말을 할 수도 있네, 낄낄낄. 이것 말고도 나는 남편의 여러 행동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다. 내가 한 집에 같이 사는 걸 뻔히 알면서 그렇게 방심한 채 살아가는 남편이 신기했다. 그리고 나는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마치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방문을 닫지 않고, 화장실 문을 닫지 않고, 언제나 누군가의 눈에 띄는 자리에 가만히 스스로를 전시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혼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일 밤 아이들을 씻기는 일에서 이제 벗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아이들과 셋이 함께 샤워기 아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좀 비켜봐, 엄마, 눈 매워, 빨리 하고 나가자,를 구호처럼 외치던 날들이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이 각자 스스로 자신들의 몸을 씻고 가꾸는 지금, 샤워를 하며 부르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내가 엿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노래네, 낄낄낄. 그러다 문득 생각나 다시 한번 숨어든 남편의 샤워 시간에, 몸을 씻는 물소리 사이사이 욕이 끼어든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으아아아악. 가지고 싶은 건 네가 아니었어, 앗, 버리고 싶은 건 네가 아니었어.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 모든 것들이 변하거나 사라져 버렸다는 걸 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대로이길 바란 그 마음을 처음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지켜왔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무한 겹의 사람이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오직 하나는 오늘 하루의 세계뿐. 젖은 머리카락에 수건을 두르고 소파에 앉아 입천장을 벗겨버린 커피를 아프게 마시며 김장훈과 장필순의 그대로 있어주면 돼를 번갈아 듣는다. 오늘에서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어제를 제대로 책임진 사람을 살면서 단 한 명이라도 만나본 적 있느냐고 성큼 다가선 봄, 겨울의 내일에 묻고 싶어 진다. 앞으로도 여태껏 그래 온 것처럼, 대충, 되는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책임은 미래의 나에게 잘 부탁드립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