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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류연재

사랑과 결제

by 준혜이


지난 토요일 저녁, 온 가족이 스테이씨 공연에 다녀왔다. 소년이 축구장 가는 차 안에서, 샤워하는 동안, 잠들기 전 머리맡에서, 내 스마트폰으로 줄기차게 흥얼거리며 들어온 그들이 보스턴에 공연하러 오신다니. 과연 아빠의 아들 사랑은 이미 오래전 주저 없이 단칼에 결제되었고. 우린 무대 바로 밑에 서서 그들의 춤과 노래를 감상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갖 굿즈로 무장한 팬들이 사방에서 공연자 못지않게 목소리를 높이고 몸도 흔들흔들. 이토록 다양한 이방의 얼굴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말로 된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는 광경은 여전히, 아니 영원히 내게 신기할 것이다. 무대 조명이 번쩍이는 순간마다 관객들의 얼굴 혹은 뒤통수, 두 눈동자와 무수한 치아만이 어둠 속에서 불처럼 켜졌다, 꺼졌다. 이 열광에 몰두해 하나로 섞여 서 있기에 우린 너무 나이 들었지, 같은 쑥스러움은 금물. 스테이씨가 직업적으로 철저히 가꾸어왔을 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과 마름에 저런 과격한 안무가 가능하다니 넋 놓고 바라보며 감탄해.

준비된 공연을 마치고 앙코르곡을 부르기 전, 환해진 무대 아래 경호원이 여럿 나타나자 관객들이 술렁인다. 스테이씨가 잠시라도 관객 곁을 걸어 다닐 게 분명한 예감에 휩싸여 우린 어리둥절. 공연장 대기 농도는 제각기 색다른 기대로 점점 진해져 알록달록 산소 부족. 소년은 멤버 중 한 명과 손을 붙여, 꺅, 하트를 만들었다. 엄마, 나 평생 손 안 씻을 거야.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찰나의 친밀함을 바라고 기꺼이 티켓값을 지불한 걸까. 여기는 무한히 사랑하고, 판단 없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 경제가 호황인 일시적 커뮤니티. 내 존재는 어디 누가 어떻게 구매하고 있는가, 아니, 무료로 줘도 아무도 안 갖는다면, 나의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무분별과 유의미 그 사이 어딘가에서 손을 떨게 만드는, 주인 없는 그 결제 충동은, 네가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 사랑, 네가 싫어하는 것을 항상 같이 싫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대놓고 좋아하진 않는 성의, 자본주의가 인간, 착각, 탁월함, 공허, 아름다움, 구경꾼, 본전.

소년이여, 부디 스스로와도 거래할 수 없는 야망을 가지라고. 내 최애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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