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여름 해 질 녘 후이네 뒤뜰. 사각 유리 탁자를 한가운데 두고, 베이지색 야외 소파에 둘러앉은 여섯 어른. 맥주 한 모금에 말 한마디씩 섞어가며 두 눈으론 수영장에 들어가 놀고 있는 아이들을 성의 없이 지킨다. 해가 다 저물고 맥주병도 하나 둘 비어 투명해져 가고, 한평생 동반자와도 같은 날 선 마음마저 그 형체를 차차 잃어갈 때, 나는 앉은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화장실로 향한다.
민트색 크록스를 꿰어 신은 발바닥 아래로 짧게 깎인 잔디 쓸리는 소리, 풀벌레 울음, 목소리 높인 애들 물장난, 탁자 위로 투명하게 내려앉는 맥주병 소리에 더해지는 누군가의 말소리는 내 귓가에서 먹먹하게 멀어져만 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놓인 계단 한쪽 모서리로 한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지나간다. 저건 아마 새끼손가락만 한 생쥐일지도 몰라 짐작하면서 소리 없이 그 자리에 몸을 숙여, 아니, 얘 개구리잖아. 나는 자연스럽게 오른팔을 뻗어 끈적이는 여름밤 습기 같은 개구리를 손안에 쥔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뒤돌아 소파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소파에 파묻힌 남편 두 무릎 앞에 서서 한국말로 손! 손! 우리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경계심 어린 시선과 손이 영어로 hand라는 걸 결국 알아낸 그들의 웃음 사이를 가로지르며 내 손아귀에서 남편 손바닥 위로 순식간에 옮겨간 개구리는 남편의 날 선 비명과 함께 그 손바닥 위를 떠나 멀리 날아간다. 나한테 왜 이래. 사랑하니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화장실이 급해진 나는 또다시 모두의 반대편으로, 개구리 어디 갔지, 발아래를 살피며 그 자리를 떠난다.
2.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구월 평일 저녁, 소년 친구 동생이 오빠들 축구장에 따라왔다. 축구 연습 중인 소년들을 등지고 잔디밭에 엎드려 무언가를 쫓아다니는 엠마를 빤히 바라보는 나를 보고 후이와 하가 동시에 말해 주었다. 쟤, 개구리 따라다니는 거야. 아니 그렇다면. 엠마! 내가 그 개구리 잡아줄게! 집채만 한 소나무 아래 낙엽색 개구리 한 마리가 우릴 피해 폴짝폴짝. 몇 번의 비명 섞인 시도 끝에 손바닥만 한 개구리 멱살, 아니 등살을 잡아 올렸다. 손가락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단단한 개구리 등뼈와 떡 벌어진 어깨에 전에 없던 거부감이 소름처럼 내 몸 안을 솟아 내렸다.
한 손에 개구리를 트로피처럼 거머쥔 나를 피해 엠마가 도망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가 누군가의 손에 잡혀 곁으로 다가오는 대상이 된 개구리는 엠마에게 재미에서 공포로 변해버렸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난 한 순간에 짓궂은 오빠 친구 엄마가 되고 말았다. 남편에게 개구리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낸다. 타인을 향한 내 사랑은 쥐를 물어다 인간에게 바치는 고양이 본능 같은 걸까. 아무려나, 내게 개구린 너무 느려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한 손에 쥘 만한 야생.
3.
후이네서 내게 개구리를 건네받던 순간 남편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남편 옆에 앉아 있던 후이 역시 겁을 집어먹고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멀리 뛰쳐 도망갔다고 그랬다. 나중에 후이는 내가 뱀을 잡아 온 줄 알고 수영장으로 뛰어들까 고민했다는 고백까지 하고. 이런 얘길 남편에게 전해 듣고 나니 언젠가 나 때문에 남편이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적실 날도 머지않았다는 기대가. 그렇지만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도망갈 수 없을 정도로 나이 든 너에게 미리 한마디 정도는 전해야겠죠. 그땐 그냥 내게 침을 뱉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