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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류연재

소년과 허락해 줘

by 준혜이

안돼. 방과 후 소년에게 전해 들은 얘길 내가 글로 써도 되겠냐고 묻자마자 소년은 거절한다. 이야기의 소유권은 물론 당사자에게 또는 이야기를 선뜻 먼저 꺼낸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시간 내어 끝까지 다 들어준 사람에게도 그 권리의 일부는 나눠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그 들은 이야기에 대해 어딘가로 다시 전하는 이야기는 맨 처음 시작된 이야기와 결코 똑같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일단 화자부터 바뀌잖아. 소년은 이제 침묵으로 대화를 거부한다. 독자가 행할 무수한 통제불능 해석의 가능성. 그것이 문제적이라면 소년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여기에다 나의 문장으로 옮겨 적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 판단하면서도, 아니, 정말 안돼?

일상 속에서 순서 없이 무작위로 벌어지는 여러 사건 간에 인과관계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이 나를 이렇게 뭐라도 쓰게 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전에 없던 문장으로 불확실한 생의 의미를 길들인다 착각하고, 집요하게 반복되는 무능력한 문장을 통해 내 인식의 한계만을 드러낸다 할지라도. 별다른 궁리 없이 앞뒤가 벌써 다 들어맞아버린 네 학교 생활 중의 일화를 내가 좀 고쳐 쓰면 안 되겠냐고.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헤드폰을 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유튜브를 감상하고 계시니까요.


아무도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쓰지 않는 이유로 내 수없이 많은 나날의 주인공, 소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기가 쉽지 않다, 고 문장을 마치려는데 아,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엄마 친구들한테 내 얘기, 내가 해준 얘기 자꾸 꺼내는 거 듣기 싫었지. 엄마의 번역과 해석을 거쳐 발화된 이야기 속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 방식 속에서 드러나는 엄마의 엄마를 벗어난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감당할 만큼 난 성숙하지 못했고. 하지만 소년, 넌 내가 쓴 걸 읽을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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