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8일
모처럼 혼자 있는 시간, (둘째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다.) 편하다. 지난 2주 동안 나는 아빠와 여러 곳을 같이 다녔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같이 데려다주고 세금 때문에 여러번 찾아간 H&R Block에서도 우리는 함께였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소아과에서 둘째 예방접종때도 아빠는 감시자같은 눈빛으로 나의 일상을 살폈다. 아빠는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빠가 살아본 적 없는 외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 말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차 안에서,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나이 든 딸과 이제 막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나이 든 아빠의 대화는 서로를 위로하고 상처내기도 했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나이 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어른이 된 자식과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는 각자 살아온 시간과 생활방식을 존중받기 바라며 서로를 은밀하게 비판한다.
나는 아빠 앞에서 내가 좋아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이 되고 엄마 앞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가 되어갔다. 나의 디딤돌이자, 나의 한계, 나의 미래. 셋이 함께 있던 시간은 내 존재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엄마로 살고 있다고해서 나의 부모에게마저 엄마노릇을 하려고 했던 건 실수였다.
나비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 날개 달린 것을 가두어 키울 수 없다. 우리에게 나비와 같은 극적인 변신은 없지만 대신 우리는 아름답게 성숙할 수 있다.
나는 이제 독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