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eed Enabler
Feb 26. 2023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같이 걸어갑시다. 이 터널을!
이번 주 반 오픈과 함께 새로운 학년인 4학년 1주 차 학습표가 함께 공지되었다.
학습표는 4학년 1반 ~ 5반까지 각 반의 1주 차 내용이 실려있었는데, 유심히 보니 내용이 다 다른 것이 각 반의 담임 선생님이 각자 작성하고 취합한 공지문인가 보다.
다른 반과 다르게 표 내용에 재미 요소가 있던 학급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오~ 요반 선생님은 좀 자유로우시겠네' 하며 아이 반을 들여다보곤 '음, 이 반 선생님은 스탠더드이실 수 있겠군'이라며 읊조렸다.
그 말을 듣던 아이는 갑자기 '아~! 그럼 어떻게!' 하며 탄식을 내뱉기 시작했다.
3학년은 유독 아이에게 힘든 시기였다.
사람마다 나와 맞는 결이란 것이 있잖은가.
옳고 그름을 떠나 아이와 3학년 선생님은 180도로 달랐다.
체계와 질서를 중시하는 선생님과 그것의 틀을 늘 깨며, 독창적 사고형의 아이는 서로 몸살을 앓았다.
20년 넘는 구력이 있으심에도 손가락 거스랭이 마냥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아이 때문에 선생님도 꽤 힘들다는 토로를 하셨다.
누구를 때린 것도 아니고, 욕한 것도, 나쁜 말을 한 것도, 우당탕 탕 구접스러운 것도 아닌데 질문과 자신의 의견을 굽힘 없이 쏟는 것을 늘 지적당하는 아이 역시도 그 시간은 상처의 시간이었다.
아이는 의욕적으로 2-3시간의 숙제를 해가고, 모든 내용을 발표하고 싶어 했지만, 선생님은 계획된 시간 안에서 아이의 의욕을 받아주기엔 형편성에 맞지 않다 하셨고, 그럼 아이는 물러서지 않고 따져대기 일쑤였다.
선생님 역시, 조그마한 놈이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때론 괘씸하기도 하고, 버릇에 좋지 않을까 칼 같이 아이의 변을 자르기도 일쑤였다.
울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던 이 기간 동안 적당한 처세와 협상이라는 것을 좀 터득했으면 하는 긍정적 바람을 가지려 노력했지만, 내 배 아파 난 자식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대범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시기는 한편으로 실패의 모습을 한 성장의 터널을 지나면서 각자 나름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시기였다.
"엄마! 이번 학년에는 분위기 맞춰서 눈치껏 행동할 거예요." 본인에게 다짐하듯 나에게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한 날이 어그제였는데... 막상 엄마의 입에서 나온 사실도 아닌 추측으로, 아이는 벌써부터 마음속에 차오르는 갑갑함을 느낀 모양이다.
생채기를 통해 성숙이라는 성장을 얻었지만, 배움이 있었다고 생채기 자국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별개다.
"엄마가 그냥 하는 얘기지 사실이 아니잖아."
"아니야, 정말 선생님이 중요하단 말이야!"
"지난번에는 선생님이나 아이들에 분위기 맞춰서 잘 행동해 볼 거라고 했잖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할 수 있는데, 하고 싶지 않아!"...
아! 아는데, 싫다.
이것은 스킬의 문제도 학습의 문제도 아닌데...
그저 마음먹는 것, 내 앞에 놓인 마음의 지점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나도 그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많았지...
'그 사람에게 처세를 잘하는 법을 아는데 난 하고 싶지 않아!', '부모님이 좋아하실 방법을 아는데 난 하고 싶지 않아!'
하다 못해, '지금 일어나면 밀렸던 일을 할 수 있는 걸 아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
그렇게 나는 매 순간의 지점에서 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음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매 순간...
난 괴로워 힘들어, 벗어나고 싶어'만 연신 내뱉으며, 정말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적극적 고민과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그래!라고 하기에는 움켜잡고 있는 그것이 나를 다시 움켜잡는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이것에 대한 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얼마만큼 그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까.
A에서 B로 옮겨가는 것에는 외부의 장애물이란 1도 없다. 그저 그냥 그 순간 내가 옮기면 된다.
그럼에도 외부 장애물보다 더 어려운 옮김이
'Mind Shift'다.
아이는 그렇게 Mind Shift 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보고 있다.
자신의 날개를 펼쳐서 날기 위해 그렇게 날개를 푸드덕 거린다. 그리고 푸드덕거리다 지치면 잠시 쉬고, 다시 푸드덕 거린다.
이 시간을 어미로써 그저 안타깝고 우려로 볼지, 아니면 삶의 입문생이 시도해 보는 희망찬 모습을 볼지는
역시도 내 마음의 선택임을 생각해 본다.
결국 그 성장의 터널을 아이 혼자 걷는게 아니였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