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기행(전라도 3-전주 남부시장 삼번집)
가끔 전주를 내려가면 친구들과 밤늦도록 술 마시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남부시장을 찾았었습니다. 시장 안쪽에는 이른 새벽부터 문을연 국밥집이 많았고, 우리는 늘 초로(初老)의 어르신이 직접 끓여내던 가게에서 모주 대신 막걸리로 쓰린 속을 풀어내곤 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모처럼 가게 된 전주 출장길, 일을 마치고 옛 생각에 남부시장을 찾았습니다. 시장 안쪽을 기웃거리며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갔던 가게를 찾아보았지만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가게를 그만두었는지 옛 단골집은 찾질 못하고 눈에 들어오는 가게로 들어가 국밥을 시킵니다.
남부시장에서는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콩나물국밥이란 메뉴가 있는 집이면 고민하지 않고 들어가도 된다는 뜻입니다. 남부시장 내 콩나물 국밥집마다 각각 나름의 비법과 방식을 갖고 끓여내지만 일반인들은 그 맛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고, 어느 집을 가거나 맛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문을 한 후 가게 안을 둘러보니 요즘 연예인보다 더 유명하다는 백종원 씨가 다녀갔는지 그의 사인과 프로그램 출연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방송했던 맛 대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나 봅니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믿을게 못 되는 분야가 맛집과 관련된 방송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방송에 출연한 식당은 외려 잘 가지 않습니다. 모두 그러지는 아닌 걸 알지만 방송 프로그램을 하나의 광고수단로 이용하는 삭당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백종원 씨가 나왔던 프로는 방송국에서 전수 조사하고 점검을 한 다음 출연을 시키는 것이라 하니 이 집 역시 나름 맛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출연했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정갈한 기본 상차림과 잠시 후 수란과 함께 토렴 한 국밥이 나오고, 주인은 파김치와 무생채를 맛보라며 더 내놓습니다. 소소하지만 몸에 베인 전주 인심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수란에 국물 몇 스푼 얹어 김가루를 뿌리고 휘휙 저어 후루룩 먼저 마십니다. 펄펄 끓는 국밥은 새우젓으로 간을 합니다. 다진 청양고추도 들어가야 국물이 칼칼하며 개운해집니다. 콩나물국밥에 오징어가 빠지면 서운합니다. 오징어는 감칠맛을 내는 역할도 하지만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국밥의 식감을 아삭한 콩나물과 함께 부드러운 맛으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징어가 빠진 콩나물 국밥을 먹으면 마치 앙꼬 빠진 찐빵처럼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맹숭해지는 까닭입니다.
뚝딱 한 그릇을 국물까지 비워냅니다. 심심해 보이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국물에서 그 깊이가 묻어나는 이 맛, 이 맛이 바로 남부시장의 ‘맛’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뚝배기 거뜬히 비웠습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돌아서 나오는 길, 문득 한 친구가 떠오릅니다. 술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이곳 남부시장 국밥집에서 함께 해장을 했던 친구, 그 친구는 이제 없습니다. 마주 앉아 주절거리던 푸념도 더는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친구가 많이 그립습니다. 남부시장을 찾을 때마다 그 친구가 그리워 울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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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번집(063-231-1586)은 전주 남부시장 내 공영주차장 가는 방면 시장 초입에 있다. 가게 문을 연지 40여 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 세월만큼 녹아있는 맛의 기본은 보장한다. 남부시장에는 삼번집을 비롯하여 현대옥 등 콩나물국밥집이 즐비하고 맛도 엇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