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진도 홍어
한마디로 홍어는 고약합니다. 좋은 말로 암모니아 냄새라고 하는데 사실은 화장실(?) 냄새에 더 가깝다 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처음 대하는 사람이 질겁을 하고 손사래 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눈 찔금 감고 한 번, 두 번 먹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되고 맙니다. 그게 홍어입니다.
모처럼 좋은 친구들과 홍어를 앞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생미역 위에 초장 살짝 찍은 홍어 한 점 올리고 묵은지로 단을 쌓고 마무리로 수육 한 점 올려 켜를 완성한 삼합에 소주 한잔 곁들이며 말이죠. 옷 속 깊이 베어든 홍어 냄새로 인해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하면서요
그런데 홍어는 억울한게 있습니다.
편협증이 심한 사람들과 편 뇌를 가진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을 빗대어 ‘홍어’라고 합니다. 물론 알아듣기 쉽게 널리 알려진 지역 특산물을 빗대어 그 지역이나, 또는 그 지역 사람들을 지칭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목적이 순수한 게 아니라 대부분 비하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조센진, 쪽발이, 짱깨, 흙형, 문딩이, 핫바지, 멍청도, 홍어, 깽깽이, 감자바우 등, 사람과 지역을 비하하는 단어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특히 요즘에도 새로운 비하 신조어를 계속해서 생산해 내기까지 합니다. 오죽했으면 국회에서 지역 비하 발언에 쓰이는 이런 단어들을 금지어로 만들어 처벌하겠다고까지 했을까요! 물론 선거기간에 해당된다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는 홍어는 무슨 잘못인가요?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표 특산물이나 음식 가운데에는 홍어뿐만 아니라 영광굴비도 있고 진도 전복도 있고 남원추어탕도 있고 전주비빔밥과 콩나물 해장국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비하 단어로 홍어를 쓰게 되었을까요? 이는 아마도 홍어에서 나는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 때문일 겁니다.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나는 요도 성분인 특유의 이 암모니아 냄새는 처음 대하는 사람들로서는 강한 거부감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한 번, 두 번 먹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맛에 중독되어 버리는 음식이 홍어입니다.
또한 홍어처럼 발효되는 생선은 거의 없습니다. 홍어와 동일 조건으로 발효과정을 지켜보면 홍어를 제외한 다른 생선들은 부패해 버리고 맙니다. 말 그대로 썩어버리는 것이지요. 홍어와 비슷한 생선으로 가오리란 생선이 있습니다. 생김새도 맛도 홍어와 비슷하다 보니 가오리를 홍어라 속여서 파는 집들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가오리는 홍어처럼 발효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무침처럼 바로 무쳐서 먹어야 합니다. 가오리는 며칠만 놔두더라도 부패하고 맙니다. 필자 역시 삭힌 홍어라는 말만 믿고 부패한 가오리를 먹은 후 며칠을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듯 격이 있는 생선이 홍어입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잔칫날 참홍어가 올라오지 않으면 ‘그 집, 잔칫상 먹잘 것 없다’라고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게 홍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홍어를 사람을 비하하는 저급 단어로 쓰이다니 화가 치밀어 오를 지경입니다. 특히 홍어를 먹을 때 더 그렇습니다.
혹자는 전라도 사람을 일컬어 ‘홍어와 홍어애탕 등 지독한 냄새에 찌들고 그것을 먹고 자랐으니 전라도 사람이 지독하고 강인하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 또한 칭찬인지 비하인지 애매합니다.
무튼, 홍어를 비하 단어로 쓰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홍어를 먹어 보라’고, 먹어 본 후 그 맛에 빠지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단언컨대 홍어를 비하 단어로 쓰는 무리들은 분명 홍어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분명할 겁니다. 그나마 홍어는 냄새는 고약할지 모르나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지만 홍어보다 못한 무리들은 고약하기만 할 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蟲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홍어는 귀한 음식입니다. 홍어는 썩는 게 아니라 삭히는 생선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김새가 비슷한 가오리는 삭히는 게 아니고 썩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가오리 음식은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삭히는 홍어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음식이니 그 귀함을 이루 말할 수 있을까요? 그 귀한 음식을 겨울 오는 초입에 그것도 ‘국내산 참홍어’를 맛보았으니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속’이 든든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홍어를 비하 단어로 나불대는 저 무리들 입에 홍어애탕으로 재갈 물릴 궁리도 하면서 말입니다.
귀한 홍어가 이제는 칠레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미국에서조차 수입되고 있답니다. 홍어를 찾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수입산이 들어 올 수록 흑산도 홍어를 비롯한 국내산 홍어는 더 귀한 대접을 받겠지만 수입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몰염치한 집들이 많다고 하니 홍어집을 찾을 때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예 맛은 국내산보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삭힌 맛은 비슷한 '수입산 주세요' 하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 양평동에 있는 진도 식당은 20여 년째 홍어를 주메뉴로 해 온 식당입니다. 이곳에서는 국내산 홍어와 수입산 홍어를 모두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홍어애탕을 비롯하여 홍어전, 홍어찜 등도 메뉴로 내놓고 있기 때문에 홍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보편화된 입맛에 맞춰서인지 삭힘의 정도가 약하지만 숙성이 잘되어 찰진 맛이 일품입니다. 생각만 하여도 입안 가득 군침도는 홍어의 매력, 쌀쌀해지는 이쯤에 탁주 한잔 곁들이며 그 매력에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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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식당(02.2678.8859)은 서울 양평동에 있다. 이 집에서는 국내산과 수입산 홍어를 병행해서 팔고 있다. 삼합이 뛰어나다. 다만 삭힘의 정도가 약하다. 처음 홍어에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