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촌놈의 바닷가 음식 도전기
태생이 산골, 그것도 사방이 첩첩산중이었던 산골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바닷가 부근의 음식들을 처음 접하고 놀란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놀랬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이었습니다. 형제처럼 지낸 선배 누이를 만나러 포항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이는 우리를 죽도시장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곳에서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을 맛 보여줬습니다. 물회라는 음식이었는데, 고추장을 풀어 넣은 빨간 국물에 익히지도 않은 생선이 큰 그릇에 가득 담겨 있던 모습은 내가 살던 산골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음식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먹는 둥 마는 둥 허둥대던 당시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날음식(회)을 먹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물회든 활어회든 눈에 띄면 사죽을 못쓸 정도로 즐겨먹지만 지금도 물회를 먹을 때면 가끔 포항 죽도시장이 떠오릅니다.
*포항 물회의 특징은 물이 없다는 것, 새포항물회(054-241-208와 , 태화회식당(054-251-7678)등이 포항의 대표적 물회 집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결혼을 하여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제주에는 후배들 몇이 살고 있었는데 선배가 신혼여행을 왔으니 딴에는 육지에서 보기 힘든 제주만의 토속음식을 맛 보이겠다고 여러 곳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후배가 사는 동네 해녀 집을 찾아가 뿔소라, 해삼 등 그날 잡은 해산물을 사서 초장 하나 놓고 슈퍼 앞에서 술판을 벌이기도 했고, 말고기 육회도 먹어보라며 내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기억으로는 제주 시가지 어느 골목 안이었을 겁니다. 이른 아침 허름한 식당으로 데리고 가더니 갈칫국이란 음식을 주문하더군요. 비릿한 갈치를 구이도 아니고 조림도 아닌 국으로 끓여 먹는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였고, 결국 몇 숟갈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생각 외로 비리지는 않았었는데, 당시만 해도 음식에 대한 편식이 심했던 나로서는 국물에 빠져있는 갈치를 보니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물론 그 시원한 맛에 제주가면 한끼 정도는 갈칫국을 먹고 옵니다.
* 제주에서 갈칫국 잘 끓이는 집으로는 제주시내 한라 식당(064-758-8301)과 서귀포에 있는 네거리 식당(064-762-5513) 등이다. 비릴 것이라는 선입견은 갖지 않아도 좋다.
세 번째는 경상도 사천 옆 곤양이란 동네를 갔을 때 일입니다. 곤양에는 처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그곳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다음날 일찍 아침상을 차려 주셨는데 상에는 미역국이 올라와 있었고, 그 미역국에는 생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역시 난생처음 보는 모습의 미역국이었지요. 아니 미역국에 생선을 넣다니, 속으로 놀라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고 맛을 봤습니다. 아, 그런데 생각 외로 맛이 있었습니다. 제주도 갈칫국 때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한 그릇 뚝딱 비웠습니다. 할머니 미역국에 들어간 생선은 가자미였습니다.
*가자미 미역국을 식사 메뉴로 내놓는 식당이 많지 않다. 미역 전문 체인점인 오복 미역(http://www.obokfood.co.kr)에서 가자미 미역국을 판매하고 있다.
그 뒤로도 바닷가 쪽을 여행할 때마다 낮선음식과의 만남은 이어졌습니다. 울진에서 담갔다는 김치를 먹다가 소스라치게 놀란적도 있습니다. 아삭한 김치 사이에 들어있던 생선토막을 보고서 말입니다. 그 생선은 해때기(대구횟대)란 생선이었고, 바닷가 부근에서는 김장김치를 담글 때 생선을 함께 담가 숙성시킨 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바닷가 마을에서는 해때기 뿐만 아니라 가자미, 도루묵, 낙지나 꼴뚜기 등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수산물로 이미 오래전부터 김치를 담가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산골 촌놈은 그저 놀랍기만 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생선들은 김치에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동해안의 대표적 생선 발효음식인 가자미 식해 등 밥식해 만드는 데 필수 재료로도 쓰입니다.
*횟대 김치를 비롯한 생선이 들어간 김치는 동해안 등 바닷가 대부분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고 있다. 가자미식해 역시 속초나 강릉 주변 식당에 가면 쉽게 맛볼 수 있다.
통영에서 유명하다는 도다리 쑥국은 우연이 아닌 수소문하여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쑥국에 생선을 넣어먹는다?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지요. 도다리는 특성상 살이 부드러운 봄 한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기에 어느 이른 봄날 통영까지 먼길을 달려갔습니다.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식당 앞에는 도다리쑥국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한 시간여를 더 기다려 맛보았던 도다리 쑥국,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봄 맛’이었습니다. 봄철의 쑥은 봄을 대변하는 향이자 보양 나물입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도다리는 봄철을 대표하는 생선입니다. 이렇게 봄을 대표하는 나물과 생선이 어우러지니 향은 구수하고 국물은 시원합니다. 말 그대로 환상의 콤비네이션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도다리 쑥국은 통영을 비롯한 남해지방에서 3월과 5월 사이에만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이다. 이 시기에 자라는 쑥은 부드럽고 약성이 뛰어나며 도다리 역시 이 시기에 고기 살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특히 통영 서호시장에는 도다리 쑥국 집이 즐비하다. 분소 식당(055-644-0495) 등이 도라리 쑥국 잘 끓이기로 유명하다.
이렇듯 내게 바닷가 음식이 낯설게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편식하던 습관과 살아온 환경 요소 때문 일 겁니다. 지역적인 환경에 따라 식재료 또한 천차만별이다 보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돌이켜 보면 나를 놀라게 했던 바닷가 음식들 속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처음 먹어봤던 포항물회나 선입견으로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제주의 갈칫국이나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곤양의 가자미 미역국, 그리고 횟대 김치, 가자미식해, 최근에 찾아가 맛보았던 통영의 도다리쑥국까지 이 모든 음식들의 공통점은 신선한 재료였습니다. 생선은 신선도가 떨어지면 비린내가 나기 시작합니다. 싱싱한 생선에서는 상대적으로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선도 좋은 생선으로 국을 끓이면 별다르게 거친 양념을 하지 않아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지요. 동해안에서 담그는 김치나 식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선이 신선하지 않으면 제대로 발효가 안될뿐더러 변질되기도 합니다.
절간의 스님네들처럼 오신채를 먹지 못하던 산골 촌놈의 입맛도 오랜 세월이 지나며 천지개벽하듯 180도 달라졌습니다. 젓갈이 들어간 음식은 근처에도 못 갔는데 지금은 제 발로 찾아다니며 먹습니다. 이래저래 까다롭던 식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잡식성에 포식성으로 둔갑해버렸습니다. 덕분에 옆구리에는 항상 바람 빵빵한 타이어 하나 끼고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얻어진 것도 있습니다. ‘진정한 맛은 원재료의 신선함에 있다’입니다. 조미료가 대세인 요즘에 생뚱맞을지 모르겠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보약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조미료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미료는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살리기보다는 고정된 일정한 맛을 내게 합니다. 그래서 성질이 다른 재료의 음식을 먹는데도 이맛이 그 맛 같고 그 맛이 이맛 같은 증상을 불러오게 됩니다.
다행히 우리 주위에는 신선한 재료를 고집하거나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비싸거나 영양가가 많다고 해서 꼭 건강식만은 아닐 겁니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고 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약이되기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장통에서 파는 국밥 한 그릇이라도 식재료 고유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고 먹는 사람 또한 맛있게 먹고 행복감을 느끼면 그것이 최고의 보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음식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요리법도 천차만별입니다. 지역에 따라 기후에 따라 식 재료에 따라, 그리고 조리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그런 음식들 가운데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음식들도 많습니다. 내가 겪었던 바닷가 음식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처음이고 낯선 음식일수록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나는 처음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고 있고 더욱이 그 음식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 음식이라면 더더욱 주저 말고 도전해보길 권합니다. 먹고 나면 호불호가 분명해지겠지만 먹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음식만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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