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하 Aug 03. 2017

전주만의 또 다른 토착문화-전주가맥

전북 전주-전일 갑오, 전일 슈퍼

'가맥'이란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된 곳이 있습니다. 유명한 맛의 고장 전주에서 입니다. 이 지역의 특징은 전주비빔밥, 전주콩나물해장국 등 음식 이름 앞에 전주라는 지명이 들어간 음식이 많다는 점입니다.

'가맥'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음주문화의 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 역시 '전주 막걸리'처럼 '전주 가맥'이라 불러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그마만큼 전주에서는 예부터 타 지역에 비해 그 지역만의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가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가맥'은 말 그대로 가게 맥주의 줄임 말인데, 시작은 이렇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시절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기에 부담스럽던 서민들이 동네 슈퍼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가게 옆에 놓인 평상이나 간이탁자에서 마시던 것이 오늘날의 가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풍경은 지금도 슈퍼나 편의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간단하고 저렴하게 술 마시기 좋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전주에서의 가맥집은 여느 지역과는 달리  가게에서 직접 만든 다양한 안주가 곁들여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업종으로까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변변찮은 안주에 술 마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간단한 안주를 조리하여 제공하기 시작한 게 가맥의 시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전주 가맥집의 원조는 전일 슈퍼, 즉 전일 갑오 집이 원조라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전일 슈퍼 근처에 살며 이 가게 변천사를 훤히 알고 있다는 토박이 전주 친구의 가맥집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초기에는 슈퍼에서 연탄을 함께 팔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게에서 직접 사서 마시면 술값이 저렴하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술 생각나면 가게로 와서 술을 마셨고, 가게 주인은 갑오징어를 비롯한 황태포 등 간단한 안주거리를 연탄불에 구워서 제공했던 것이 전일갑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갑오징어나 황태포는 식어버리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드럽게 하기 위해 두드리는 기계도 직접 고안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딱딱한 갑오징어와 황태포를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연탄불로 굽는데 타지 않으면서도 속까지 파삭하게 구워지는 황금비율을 찾아내어 지금의 황태포가 되었다고 하니 그 명성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일 슈퍼 가맥이 명성을 얻게 된 계기에는 그 집만의 독특한 소스 역시 한몫을 하였습니다. 자체 개발한 양념소스는 손님들로부터 마약 소스라 불릴 만큼 황태포와 더불어 절대적인 콤비를 이룹니다.




질길 것이라는 황태포에 대한 선입견은 이곳의 황태포를 맛보는 순간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혀끝에 닿자마자 황태포는 마치 비스킷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립니다. 거기에 청양고추가 들어간 양념소스를 곁들이면 그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맛에 중독되다시피 하여 이 집을 또 찾게 됩니다. 이쯤이면 전일슈퍼가 가맥의 대명사로 불리는 까닭을 저절로 알게됩니다.

현재 전주에는 삼백여 군데의 가맥집이 있다고 합니다. 전주 가맥집의 특징은 간판에 가맥이라고 써 붙여져 있는 집이 별로 없다는 것, 요즘에는 가맥이라고 간판을 걸어 놓은 가게들이 종종 눈에 띄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가맥집 간판에는 ㅇㅇ슈퍼라고 되어있습니다. 초행길에 가맥이라 쓰여 있는 간판만 찾다 보면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전일 슈퍼의 황태포가 유명한 것처럼 가맥집마다 각기 대표 메뉴 한 가지씩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치킨으로 유명한 영동 슈퍼와 참치 전으로 유명한 슬기 슈퍼는 전일 슈퍼와 함께 전주 삼대 가맥집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밖에 닭발이 유명한 집이 있으며, 북어포가 유명한 집도 있고 계란말이가 유명한 집도 있습니다.
이는 같은 메뉴를 중복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기보다는 독자 메뉴를 개발하거나 자신 있는 메뉴를 내세운 영업적 전략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가맥집을 찾는 애주가들에게는 다양한 안주를 골라먹는 재미까지 추가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주 가맥집의 특징은 싸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대부분 가맥집이 음식점 형태를 갖추고 영업을 하기 때문에 슈퍼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는 싸지 않지만 맥주 값 역시 술집이나 일반식당에서 파는 것보다는 그래도 저렴합니다. 안주 역시 대표 메뉴는 만원 안쪽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입가심'이라고 1차 후에 2차로 호프집 등에서 한잔 더 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보편화되어 있는데 가맥집이 ‘2차로 들르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말 그대로 가볍게 한잔 더하거나 지나가며 들르는 선술집 개념이라고 보면 옳을 듯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예전처럼 1차부터 가맥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가맥이 처음 시작되었던 80년대 그 시절처럼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지금도 여전히 넉넉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입니다. 이럴 땐 시원한 맥주 한잔이 저절로 생각납니다. 이쯤이면 전주의 가맥집들은 해 떨어 지기가 무섭게 애주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겁니다.

때마침 전주에서는 가맥 축제가 열립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2017 가맥 축제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전주 종합운동장 주차장에서  실시됩니다. 또한 축제기간에는 완주에 있는 하이트맥주공장에서 당일 생산한 맥주를 제공하며 대표적인 가맥집 20여 곳이 함께 참여한다고 합니다.


아직 휴가 계획이 미정이라면 전주로의 여행을 계획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가맥 축제의 유쾌하고 뜨거운 현장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이색적인 축제도 경험해 보고, 전주만의 다양한 볼거리들과 넘쳐나는 먹거리들을 향미하다 보면 전주라는 도시의 또 다른 매력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 겁니다. 물론 더위도 시원스레 날려버릴 수 있겠지요?


#황준호와떠나는달팽이여행 #황준호와떠나는식도락여행 #애니투어 #느티나무클럽 #달팽이 #전일슈퍼 #전일갑오 #전주가맥 #전주 #가맥 #가맥축제 #전주가맥축제





*전주 가맥 축제는 2015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3회째로 지역경제활성화, 골목상권 보호,  도민화합, 사회공헌이라는 목표를 통해 '착한 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2017년에는 더 많은 관광객 및 도민 참여를 위해 행사 장소를 변경하여 진행하며, "가맥이라는 문화를 담은 독자적인 콘텐츠 개발과 다양한 청년 연계 프로그램, 사회적 경제 관련 사업들을 병행하여 보다 다채롭게 진행된다.

 '오늘 만든 맥주를 오늘 마실수 있는 전국 유일의 축제' "가맥 축제"에 오셔서 한 여름밤의 시원함을 제대로 즐기시길 바란다. (가맥축제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gamaek)


매거진의 이전글 구례 노포(老鋪)식당 소 내장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