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기행(전라도②-전남 구례읍 목화식당)
잔설이 남아있는 3월 중순 무렵이면 지리산 자락에는 봄이 찾아들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무채색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던 들과 산 곳곳에서 파릇한 기운들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꽃나무 가지 끝에서는 꽃망울들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죽은 듯 흐르던 물줄기는 점점 더 기세가 살아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지리산 자락의 봄소식은 매화가 앞장섭니다. 섬진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골짜기마다 팝콘 터지듯 매화꽃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환상적인 장관이 펼쳐집니다. 매화 농원이 즐비한 백운산 자락과는 달리 지리산 골짜기에는 절집 마당의 묵은 매화나무들이 처연히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강 건너 농원의 매화들처럼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넉넉합니다.
그 가운데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화는 그 자태로나 검붉은 색으로나 매화중에 으뜸입니다.
그래서 삼월 중순 무렵이면 내로라하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곳 화엄사 절마당으로 몰려듭니다. 그네들처럼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 역시 붉다 못해 검은빛을 띠는 오묘한 홍매를 담기 위해 친구를 꼬드겨 새벽 먼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쯤 되면 고요한 화엄사 절마당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때아닌 홍역을 치르게 됩니다. 하지만 셔터 소리만 적막을 깨고 붉게 꽃망울 터뜨린 홍매화만 봄을 증명할 뿐 화엄사 계곡을 휘젓는 바람은 여전히 찬기운을 품고 있어 매섭습니다.
두어 시간 여, 그렇게 화엄사 절집에서 시주 한 푼 안 내고 노닥거리다 늦은 곡기에 절집을 나와 구례읍내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순댓국집은 어지간한 동네마다 잘 끓이는 집이 한 곳씩은 있기 마련인데 구례에도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순댓국집이 있습니다. 또한 섬진강을 끼고 있다 보니 민물 매운탕과 다슬기 탕집도 구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들입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요? 아니 장날이었으면 더 좋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순댓국집이며 다슬기 탕집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산촌의 작은 읍내이다 보니 아마도 아침식사를 찾는 사람이 드문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내장탕 잘 끓이기로 널리 알려진 목화식당입니다. 다행히 가게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목화식당은 전형적인 시골 읍내의 노포(老鋪) 식당입니다. 메뉴도 단출합니다. 소내장탕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흔히들 내장탕 하면 사골 우려낸 뽀얀 국물 아니면 빨간 양념이 들어간 내장탕을 떠올릴 텐데 목화식당 내장탕은 맑은 국물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맹탕처럼 보이지만 한입 떠서 맛을 보면 깔끔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납니다.
그냥 단순한 육수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다양한 내장과 거기에 콩나물과 미나리, 그리고 그 위에 부추가 올라갑니다. 기호에 따라 빨간 양념이나 초피를 타서 먹어도 됩니다. 지역에 따라 제피, 젠피라고도 불리는 향신료의 일종인 초피는 향이 독특하고 강한데 의외로 음식하고 궁합이 잘 맞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추어탕이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아귀찜 등 찜요리에도 초피를 넣어 먹기도합니다. 목화식당에서도 초피를 내놓는데 이 역시 소내장탕 국물과 잘 어울립니다.
내장 부위는 적당히 끓여내면 자체에서 기름진 단맛이 우러납니다. 그러니 굳이 진한 사골육수를 쓰지 않더라도 맑으면서 깊이 있는 육수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목화식당 내장탕에는 곱창, 허파, 양과 선지가 들어갑니다. 양으로 치자면 적은 양이 아닙니다. 그러니 내장 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제격인 집입니다. 또한 내장에서 잡내 하나 나지 않습니다. 밀가루와 왕소금으로 잡내와 기름기를 제거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정성이 곁들여지니 잡내는 제거되고 내장 고기는 흐트러짐 없는 맛이 유지됩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30여 년을 이어져 오고 있는 이 집만의 비결이겠지요?
뚝배기에 푸짐하게 담긴 걸 보면 이걸 어떻게 다 먹지? 곤란해하면서도 어느 순간 빈 뚝배기를 보게 됩니다. 목화식당 내장탕은 해장국으로도 제격입니다. 단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속 풀러 왔다가 시원한 국물 맛에 외려 반주 한잔 곁들이는 일입니다. 뚝배기 한 그릇 비우고 나니 화엄사 계곡 찬바람에 얼었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하게 풀어져 있었습니다.
여행의 길, 당연히 낯선 곳에 대한 이질감이나 정보 부족으로 인해 여행지나 먹을 것에 대해 한두 번쯤 곤란을 겪어봤을 겁니다. 특히 뭘 먹을까하는 고민을 할때는 주저 없이 그 지역에서 오래된 노포 식당을 수소문해서 가볼 일입니다. 어쩌면 요즘 세대 입맛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터무니없는 음식을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곳이었다면 지금껏 식당을 유지해 올 수 도 없었겠지요?
구례읍 외진 곳에 있는 목화식당도 그러합니다. 한 자리에서 삼십여 년 꾸준히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으며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식당이면 기본 베이스는 한다는 반증 아닐까요? 화엄사 홍매를 만나러 갔던 길, 홍매도 보고 맛깔스럽고 속까지 든든한 음식까지 맛보았으니 일거양득 맞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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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식당(061-782-9171)은 구례읍사무소 뒷편에 있다. 현지인들보다 외지인들에게 더 알려진 식당인데, 삼십년 넘게 독특하게 끓여오고 있는 소내장탕 때문이다.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과 뚝배기에 가득 담겨져 있는 내장이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