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가 불혹인 시절이 있었다.
갈팡질팡 했어도 철부지처럼 살았던 이십 대 시절보다
나름 삶의 본질을 찾으려 무던히 애썼던
삼십 대의 마지막 시절,
그 시절 가슴은 왜 그렇게 저미었던지,
애꿎은 소주병은 얼마나 비워댔던지,
그런 삼십 대의 끝자락 이내 게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지천명(知天命)이란 단어가 어느새 지척에 와있다.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는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반영反映하면
그 답이 바로 보이는 것,
열심히 살았어도,
누구보다 치열히 살았어도
그래서 남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 자위(自慰)하여도
스스로 돌아보면 처지지 않은 어깨 몇이나 될까.
칼날 같던 성정性情도 무뎌질 만큼 무뎌졌고
흔하게 시려오던 가슴도 이제 통증을 잊은 지 오래이다.
다만 십여 년의 세월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은
소주잔 연신 비워 내는일,
새우깡 한 봉지로 소주 몇 병 비워내던 스무 살 시절처럼
안주 부실해도 여전히 술잔 앞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
자랑할 일도 아닌데 현실이 그러하다.
세월 더 흘러 환갑이란 단어가
지금처럼 또 가까이 오면 그때는 어떤 감정이
스스로를 흐트러 놓을까.
오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살아 움죽거리고 있으면
반드시 그 시절이 오고 만다는 것,
두 번도 아닌 한 번뿐인 그 시절이 반드시 온다는 것,
오지 않았으니 미리 걱정할 일 아님을 알면서도
불현듯 질곡桎梏의 한 갑자甲子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다.
가슴으로 한 줄 바람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