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리산! 그리고......

외삼촌을 기리며

by 황하

생 오지奧地에서


문순태

흐린 날 홀로 산에 오르다
구름에 발목 감겨
길을 잃었다.
미혹의 시간
숲 속을 헤매다
춤추는 신선나비 따라
산을 내려왔다.
숲길 고갯길 비탈길 오솔길
모든 길은 떠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생오지로 돌아오는 회로回路였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신 문순태 선생께서 도시생활을 접고 50여 년 만에 고향 생오지로 돌아와 쓰신 시이다.

나의 유일한 심적(心的) 말벗이었던 외삼촌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이태가 되어간다. 지리산 산행 길에 들른 외숙모 집에서 나는 삼촌의 유품을 챙겨 왔다. 유품은 이면지, 또는 철 지난 달력 오려내어 그곳에 빼곡히 써 내려간 글들이다. 돌아가셨을 때 1차로 한 보따리 가져왔었는데 얼마 전 이사하면서 또 나왔나 보다.

숙모께서는 다행히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내게 전해주신 것이다.

삼촌은 살아생전 한학(漢學)이며, 영어, 그리고 다양한 종교까지 모두 독학으로 섭렵하셨었고, 그 내공은 거의 전문가 수준까지 이르러 셨었다. 그렇게 혼자서 치열하게 공부하신 흔적이 내가 가져온 이면지, 달력 종이 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언젠가 동네 홍어 집서 술 한잔 나누시며 삼촌은 내게 접어버린 오래전 내 꿈을 들춰내셨다.
"먹고 살려 바둥거리며 쓰는 글보다 넋두리처럼 막 쓰는 지금 네 글이 훨씬 좋다. 삼촌도 요즘 혼자 시 공부 중이다" 라며 위로해주시던 분. 동사무소에서 무료 컴퓨터 교육을 받고 인터넷을 배우시더니 내 블로그까지 찾아와서 푸념하며 써놨던 글들을 보셨던 게다.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삼촌의 치열한 흔적을 들추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그 많은 글들 중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문순태 선생의 생오지에서 라는 시(詩). 아마도 삼촌은 이 시를 읽고 쓰며 당신의 처지를 무던히도 비관하지 않았을까.
이 시처럼 당신도 돌고 돌아 수 십 년 만에 회귀하여 고향으로 왔는데 달라진 마을, 달라진 사람, 이렇듯 현실은 외려 더 정 붙이지도 못하고 자괴심마저 들게 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렇게 삼촌은 고향에서 굳어버린 육신만 남겨 놓은 채 떠났다.

낙향하여 생긴 허허로움을 끝내 걷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벗어 버리신 분, 그리움 이란거 세월 흐를수록 무뎌진다는데 어찌 이 분에 대해서는 시간 지날수록 더 사무쳐지는 걸까!

모두 떠나고 이제는 홀로 당신이 일구던 밭 한 귀퉁이에 누워 지리 능선이며 천왕봉 우러르고 켜켜이 쌓인 뱀사골 산그늘 헤아리고 있으니 속이라도 편하신 겐가! 남아있는 자만 애절한 것 같아 갑자기 심사가 뒤틀리려 한다.


나는 지리산을 십 수년 채 해마다 성지 순례하듯 찾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이 나를 해마다 지리로 이끌게 했는데, 이젠 그리움이 하나 더 늘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올해도 지리를 나는 찾을 것이다.

지리산 어느 계곡, 어느 산허리를 걸으며 종기처럼 뭉쳐진 그리움 한 덩이 도려내어 슬쩍 떨궈놓고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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