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 고향을 찾다
1.
찰나 같은 순간이었나 보다. 문자 소리 때문인지 빗소리 때문인지 잠에서 깨어보니 잠든 지 겨우 십여 분이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잠은 내게서 사라지고 말았다.
2.
불 꺼진 방, 잠에서 깨어난 나, 그리고 또렷이 들리는 빗소리, 아마도 저 비는 봄을 재촉하는 비 일 게다. 한때는 겨울 초입부터 다가올 봄을 기다리곤 했는데, 들불처럼 피 끓던 젊은 날의 이야기. 이젠 꿈인 듯 아득하기만 하다.
3.
습관처럼 오지도 않은 봄에 가는 봄을 서둘러 애절(哀切)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것들에 두려움이 들기 시작하였다. 다가올봄, 다가올 내일, 눈떠서 맞이할 아침, 넘어가는 달력, 그리고 때 되면 울리는 전화벨.
4.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내포되어 있으리라. 나이가 든 다는 것에, 가슴으로 담아 둘 것들이 늘어 간다는 것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에, 그럼에도 시위 떠난 화살처럼 시간은 참 빨리도 간다는 것에.
5.
더불어, 함께, 답게, 좋아하는 단어 들이다. 세상의 구조는 혼자인 듯하면서도 결코 혼자가 아니게 끔 되어있다. 적어도 사회란 틀 속의 구성원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 구성원이 되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와는 반드시 어울리고 풀어가고 동행해야 한다.
6.
하지만 그런 세상 속에도 섬은 존재한다. 광화문 네거리에도 섬은 존재하고 신도림역 환승장에도 섬은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그 섬에는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오로지 당신만이 홀로 그 섬에 있다.
7.
지난 12월의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본다. 폭설이 내리던 날 찾아갔던 내 고향 시목리柹木理집터. 살던 집에는 작은 툇마루가 있었고, 아궁이 두 개였던 부엌이 있었고, 작은 샘이 있었다. 파랗게 색칠한 스레트 지붕에, 돌담은 어린아이 키보다 높았고 그 담너머 춘자네 뽕나무밭이 있었다. 40여 년 전의 풍경이다.
그리고 오늘, 허물어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무너진 돌담과 감나무 한그루.
8.
비가 그쳤나 보다. 조용해지니 외려 주마등 같은 상념들이 보푸라기처럼 다시 일어난다. 쉼표 하나 찍어 논다. 그리고 퍼즐 맞추듯 흐트러진 상념들을 모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니 거기에 내가 있다.
아홉 살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나이는 지천명(知天命)이 턱밑에 있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나이만큼이나 쌓여 있다. 그러니 뒤척일 수밖에. 결국 오늘도 밤은 길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