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멸치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의 도시락과 찬은 살림살이 마냥 늘 궁핍했다. 꽁보리밥은 기본이었고 춘궁기가 되면 무나 고구마 등이 섞인 잡곡 도시락이 태반인 날이 많았다. 반찬은 늘 김치 아니면 깍두기였고, 소풍 때나 되어야 김밥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는데, 단무지 하나 들어있지 않고 소금물로 간만 맞춘 맨 김밥이었다.
지금이야 이러한 음식들이 웰빙음식, 건강음식 하며 새롭게 조명을 받지만 그러한 음식을 매일 먹어야 했던 당시의 어린 내게는 분명 큰 곤욕이었다.
마른 멸치가 고추장과 함께 도시락 반찬으로 등장하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은 어머니가 행상 나가셔서 팔고 남는 날이었다. 도시락 한편에 가지런히 놓인 마른 멸치와 고추장, 나는 그런 날이면 친구들에게 들킬세라 도시락을 가리고 급하게 밥을 먹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야 넉넉한 집이 기껏 한 두 집이었고 대부분 살림살이가 비슷한 처지였는데도 나는 마른 멸치 고추장 반찬이 창피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궁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어머니께서는 나름 다양한 영양을 먹이기 위해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마른 멸치가 아니면 도시락 반찬은 항상 김치뿐 이였기 때문이다.
술 생각이 나서 안주거리 찾느라 냉장고를 뒤져보니 마른 멸치가 보인다. 불현듯 떠오른 옛 추억에 마른 멸치 몇 마리 꺼내어 안주를 삼아 본다. 세월 참 많이도 흘렀는지 소주 한잔에 멸치 한 마리가 안주로 족하다. 급하게 삼키다가 목에 걸려 컥컥 대던 어린날의 그 멸치를 곱씹어보니 어머니 젓 맛처럼 달달하다.
돌이켜보니 어느덧 내 나이도 멸치반찬 싸주시던 어머니 나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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