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이르게도 피어나는데

2015ㅣ07ㅣ24

by 황하

1.

백일홍, 배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백여 일 동안 작은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리는 꽃, 여름에 피는 꽃 중에 이처럼 화사롭고 원색인 꽃이 또 있을까! 백일홍이 피기 시작했으니 여름 또한 시작된 게다.

2.
기도를 시작한 지 60여 일이 지나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시작의 발원은 '나' 잘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에서 였는데, 스스로도 낯 간지러운 짓을 못하는 성품이라 이내 원을 바꾸고 말았다.

3.
내 기도의 원력은 공(空)한 자리와 마음길을 열어 보여주신 불보살들께 감사드리기, 큰길 일러주신 어르신과 도반들께 감사드리기, 나의 근원 뿌리이신 선조들께 감사드리기, 한 시절에 유생 무생의 연으로 만난 인연들께 감사드리기, 그리고 회향으로 내 자성에 채찍질하기이다.

4.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돌아보고 채근하며 도약하기 위한 반성은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과도 같아서 이로울 수 있으나 자칫 자괴로 빠져들면 나락으로 금방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기도는 또 다른 원을 세우게 되었고, 그 원은 첫 기도가 끝나고 나서도 이어질 것이고, 아마도 그러는 사이 새로운 원이 다시 세워질게 분명하니 시작은 있으나 그 끝이 없는 기도가 되고 말았다.

5.
하지만 오늘은 기도의 원을 달리한다. 낯 간지럽지만 나를 위한 기도를 하여야 한다. 어쩌면 오늘이 내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부침이 약해서든지, 처한 환경이 그래 서였든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변곡점들을 지나왔지만 지천명을 목전에 두고 다가온 변곡점은 분명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의 기도는 나를 위해 욕심을 내었고 그 기도가 '통通'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6.
마른장마가 길게도 이어지더니 모처럼 비가 내리고 있고 하얀 이 드러내듯 또렷하던 돌다리도 어느새 잠기고 말았다. 피기 시작한 배롱나무꽃은 굵은 빗줄기와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꽃 피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일상은 이렇듯 처해진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순응하며 여여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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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척 길 것만 같은 오늘 나의 하루도 이처럼 잘 대처하고 진정하여 변곡점에 제대로 된 방점을 찍을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비단 오늘뿐이겠는가. 단 하루, 한 시간도 닮음이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들에게 닥쳐올 한 치 앞은 늘 새로움이고 늘 낯섦이다. 그러니 그 새로움과 낯섦을 의연히 대처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안으로의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마음의 심주에 살 찌우기를 노력해야 한다. 깊이 뿌리내린 나무는 그 어떠함에도 쓰러지지 않듯 사람 또한 그 어떠한 역경에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8.
오늘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분명 내게 각별한 새로움이고 특별한 낯섦의 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오늘이 어제가 되면 오늘의 결과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내게 주어지게 된다. 내가 원했던 결과이든, 원하지 않았던 결과이든 나는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멈추지 않는 이상 이어져온 삶은 어제의 연속이 오늘이고 오늘의 연속이 내일이기 때문이다. 안개 자욱하다고 본면목이 사라진 게 아니듯, 먹장구름 속에 볕은 항상 들어있듯 영위해야 할 내 삶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음이다.
가려지고 그늘진 날들이 연속일지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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