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피는 계절이 오면,

2015ㅣ05ㅣ16

by 황하

1.

도덕산 허리춤이 내 어머니 새치처럼 희끗희끗 해진 걸 보니 오월이구나. 산 자락 밑 병풍처럼 에워싼 아카시아 숲 속 외딴집, 유년의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던 내겐 오월이 오면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흔적들이 보푸라기처럼 되살아 나곤 한다. 그립지 않은 시절에 그리운 내 어미와 함께.

2.
이쯤이면 어머니는 강가 모래밭에서 잡초와 사투를 벌이기 시작하셨다. 발버둥 쳐도 헤어나질 못했던 가난처럼 뽑아도 돌아서면 어느새 자라 오르는 잡초, 그 모진 생명력은 경외하지만 내 어머니의 허리춤은 무서리 내릴 때까지 굽어 있었다.

3.
아카시아 향은 그래서 내게는 슬픈 향이다. 지나는 길이든 바람결이든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스치면 반가우면서도 눈가를 붉힐 때가 많다. 이녁 어디엔가 계실 내 어머니도 그러실까.

4.
그래서 이별은 못할 짓인가 보다. 정을 준만큼, 마음에 그 사람이 안착한 깊이만큼 헤어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고 힘든 것은 이별의 순간이 아니라 헤어지고 난 후 밀물처럼 밀려 들어올 앞으로의 시간들이다. 세월 가면 잊힌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적어도 가슴에 대못처럼 박힌 사람은 더 그러하다.

5.
살면서 잘 살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말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자 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종종 본의 아니게 불편을 주기도 하나 보다. 왜 일까 라고 돌이켜 보면 결론은 나의 무능 때문이다. 내 무능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상대방들은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6.
이해해 주겠지 하는 얄팍한 수는 오래 가질 못한다. 물이 임계점에 이르러야 끓기 시작하듯 것으로 드러내 보이지 만 않을 뿐 속에서는 불편들이 채곡 채곡 쌓이게 된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터진다. 얄팍한 수를 썼던 나는 갑절의 대미지를 떠안게 된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인 게다.

7.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 지천명이 코 앞인데 물질적 풍요야 차지하더라도 적어도 마음은 농익을 때가 되었을 만도 한데 그러하질 못하다. 타고난 근기가 약하기 때문이리라. 찬바람 한줄기로도 마음 씻겨낼 그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8.
일전에 백보 원장께서 다친 내 어깨에 침을 꽂으며 한마디 툭 내던진 물음을 아직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백보 원장은 내게 "고릿적 보리고개 넘기기 힘들었고, 사람은 아홉 줄 넘기기 힘들다 한 이유를 아시겠나" 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던진 한마디 물음이 이젠 화두가 되어 버렸다.

9.
태어난 것 자체를 고독이라 이야기한 시오랑만큼은 아니라도 살면서 충분히 외로워도 보고 고독해 보기도 했다. 이쯤이면 무뎌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자책을 할 때마다 가슴은 더 까매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이테 늘듯 자책만 더 늘고 있다. 결국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로 귀결된다. 그래서 자책이다. 분명한 사실은 남의 탓할 일이 아니라는 거.

10.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 마냥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면 그만이지. 내게 주어진 종착이 어디까지 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때까지 그러려니 순응하며 살면 그만이지......,
문제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들불처럼 반기 들고일어나 채근하고 있다는 거. 그럼 도대체 나는 어쩌란 말이냐.

11.
도덕산 허리춤에 새치처럼 희끗거리는 아카시아가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듯한데 열어둔 창틈으로 그 향은 오지 않고 있다. 다행이다. 습관처럼 오르던 울컥 이 덕분에 잠잠하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립다.

12.
다람쥐 챗바뀌는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바람은 쉴 새 없이 떠다녀야 한다. 멈춰서는 순간 더 이상 바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푸념하듯 넋두리 토해내는 이 시간에도 세월은 늘 찰나의 쉼도 없이 흐르고 있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나만 정리하면 된다. 가슴으로 찬바람은 여전히 불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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