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장마

2015ㅣ06ㅣ20ㅣ07:50

by 황하

1.

후드득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는 한곡의 교향악을 듣는 것처럼 느리게, 빠르게, 때로는 거침없이 창문을 두들기고 있다. 빗방울이 들려주는 타악의 소리는 몇 시간째 사람을 창가에 우두커니 메여놓는다. 피아노 선율이라도 곁들여지면 잭다니엘 언더락 한잔이 간절해진다.

2.
비는 그렇게 내리고 있고, 강물은 불어 돌다리를 감추고 만다. 촘촘촘 물속으로 숨어든 다리,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던 그 돌다리가 비오니 이제 휴식을 한다. 비 그치고 강물 줄어들면 다리는 수면 위로 다시 올라 누군가의 건널목이 되어주겠지.

3.
나란히 놓인 것들은 역행하지 않는다. 강물은 강물대로, 길은 길대로 제시된 가야 할 방향으로 묵묵히 가고 있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으면 좋지 않을까. 자신에게 제시된 운명따라 순탄하게만 살아가게 끔 이끌어 주는 것,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그대로만 살아라 가이드해 주는 것, 그렇게 사는 삶이 비록 밋밋하다 할 지라도 때로는 한 번쯤 그렇게 살아 보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4.
불어나는 강물을 보면 내 살던 어린 시절의 섬진강가 냉천이 저절로 떠오른다. 비가 내리면 골짜기마다 물들이 토해내듯 흘러내려 삽시간에 세를 불린다. 늘어난 물은 이내 황톳물이 되고 강가에 있던 모래밭 턱밑까지 차올라 밭을 위태하게 한다. 그쯤이면 어머니는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둑쌓기에 여념 없으셨었다. 갑자기 마음이 낭창踉蹌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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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즈넉한 시간이 길어지면, 고즈넉한 날들이 이어지면 무언가에 쫓기듯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불안이다. 끝 간 데 없이 물밀듯 밀려드는 불안, 통증처럼 밀려드는 이 불안을 참아내려 내 안의 '나'에게 기도를 한다. 예수, 부처가 들어줄 것 같았으면 이미 이 불안은 사라지고 없었으리. 수십 년째 내 안에 종기처럼 뿌리내리고 안착해 있는 이 절대의 불안, 결국 해결책은 '나'밖에 없고 그러니 내가 믿어야 하는 빽 역시 내 안의 '나'일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자문하고 '나'에게 의지하고 '나'에게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내는 유일한 원천이고 이 절대의 불안을 녹여낼 유일한 원천이니.

6.
휘몰아치며 내리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하얀 물새 한 마리 허공을 유영하더니 작은 톳 섬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먹잇감을 찾아야 하는 새의 입장이야 절박함일 수 있겠지만 그 날갯짓을 보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선망이고 부러움이다.

7.
비 내린 온종일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지기 전 마지막 용트림을 한다. 마치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듯 층층 구름 사이를 헤집고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다. 사람도 저 해처럼 과시하며 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누구에게 잊혀가는 존재로 살아서는 안된다. 잊힌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8.
이 비 그치고 나면 이제 곧 장마도 따라오겠지. 장마따라 능소화도 흐트러지게 피어날 게다. 목감천 망초 무리도 키가 한 뼘이나 더 자라 오르겠다. 그러는 동안 강은 늘어났다 줄어 났다를 반복하며 유유히 때로는 거칠게 먼 바다를 향해 흘러가겠지. 어른께서는 저 강물을 닮아라 했다. 느려야 할 곳에서는 느리게, 빨라야 할 곳에서는 거침없이, 바윗돌을 만나면 돌아서, 하지만 막힘없이 물러섬 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을 닮아라 했다.
창가에서 우두커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나 자신이 저 강물처럼 살고 있는지 강물에 투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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