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주(白酒)를 마시며

by 황하

언제부터 백주를 좋아했는지 뚜렷한 기억은 없다. 대부분 그러하듯 중국 술 백주, 고량주를 접하는 계기는 중화요리 집에서 짬뽕 국물에 곁들여 마시던 이과두주가 처음일 게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내게 있어 이과두주에 대한 첫 기억은 목이 타 들어가듯 독하고 그래서 빨리 취했고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입안에 고량의 향이 막걸리 뒷 트림처럼 남아 있었다는, 한마디로 고약한 술이었었다.


삶의 부대낌과 술과의 연관성은 뗄래 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특히 삶의 질곡이 많을수록 술과의 사연은 부질 하게도 많다. 나 역시 쓰고 독하기만 했던 그 술을 짬뽕 한 그릇 시켜 놓고 두어 병쯤은 혼자서도 거뜬히 비워낼 만큼 즐겨 찾게 될 줄을 짐작이나 했을까!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삼십 대 시절의 얘기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술맛보다는 빨리 취하고 싶었던 게 이유였는데, 가격도 저렴하며 독하여 빨리 취하기에는 소주보다 이과두주가 최적의 술이었던 게다.

습관은 참 무섭다고 했던가. 이과두주의 향이 익숙해지자 수백 여 종에 이르는 다른 중국 술의 향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리고 이과두주보다 훨씬 좋은 향의 백주가 널려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기회가 되면 소주보다 백주를 더 찾는다. 다행히 내가 백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중국의 지인들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백주를 챙겨 온다.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백주를 마신다. 풍랑처럼 5월의 비바람이 창밖에서 아우성이다. 굵어진 빗방울은 바람에 실려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창문으로 들이치기를 반복한다. 어두워진 창문 밖의 불빛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느덧 이 창가에서의 시간이 일 년여를 지나고 있다.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일 년이라는 시간,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의 시간이었을까! 호기로운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속으로 뛰어든 도피처였을까? 분명한 사실은 아직도 뚜렷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론을 얻지 못했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저 마지막 만찬처럼 마지막 남은 한병의 백주를 비워내기만 할 뿐, 빗소리 요란한 창밖과는 달리 내 머무는 두어 평 사무실은 침묵만 깊다.

어둠이 깊어졌어도 창밖의 풍경들은 여전히 익숙하다. 52도 백주의 목 넘김은 여전히 싸하고 독하기만 하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쉽게 오르지 않는 취기와 정리되지 않는 내 마음뿐, 누구의 말처럼 아직도 나의 아홉 수는 진행형이라는 어쭙잖은 핑계를 안주 삼고 있다.
날 밝으면 짬뽕 국물에 이과두주로 해장이나 해야겠다.

*반도정은 중국 산동성에서 생산되는 백주이다. 고량의 향이 강하지 않고 적당하며 목 넘김이 부드럽다.


a.jpg
b.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삼촌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