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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꼬막 핑계 삼아 술, 마시다!

안주(按酒) 기행

by 황하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마트에 들렀습니다. 딱히 살 것이라고는 소주 몇 병, 비워진 술장고를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요? 막상 마트에 들어가니 눈에 띄는 것마다 필요한 것이라며 가슴에 분탕질이 일어납니다. 억누르고, 피꼬막 한 팩과 돌나물 한팩 그리고 소주 몇 병 사들고 서둘러 마트를 빠져나옵니다.

이로서 오늘 술 마실 안주와 안주가 있어 술 한잔 한다는 핑곗거리가 생겼습니다.


볼 냄비에 물을 끓입니다.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 사이에 돌나물을 찬물에 씻고 식초 몇 방울 떨궈 놉니다.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손질한 피꼬막을 주저 없이 끓는 물에 투하시킵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둡니다.


초장을 만듭니다. 고추장 몇 스푼, 몇 해 전 담갔던 매실액을 적당히 넣고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며 맛 찾기를 몇 차례, 내가 좋아하는 초장 맛을 맞춰냅니다. 만든 초장을 물기를 뺀 돌나무에 뿌려 놓습니다.


뚜껑을 덮어놨던 피꼬막 냄비에서 거품이 일어납니다. 뚜껑을 열어 거품을 가라 앉히고 냄비를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뚜껑을 닫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거품이 일어납니다. 가스불을 끕니다. 곧바로 찬물에 담급니다. 그리고 서둘러 물을 버리고 입을 벌린 피꼬막을 접시에 담아냅니다.


상차림을 시작합니다. 피꼬막 숙회와 돌나물 초무침, 오늘 내 주안상의 안주입니다. 피꼬막은 별도의 양념장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먹어야 피꼬막만의 포만한 식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초장이나 간장 양념장을 DP로 상에 올린 건 아닙니다. 소주 두어 병 비워갈 때쯤이면 입안은 이미 알코올로 인해 감각이 무뎌집니다. 그때 잔을 비울 때마다 번갈아가며 양념장을 살짝 곁들입니다. 입안에서는 새로운 맛이 소주와 함께 번갈아가며 호강을 합니다.





몇 해 전 덕유산 자락 산골에서 돌나물 몇 뿌리를 이식해와 집 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번식력 강한 돌나물은 해마다 나른한 봄이 오면 내 입맛을 깨워줍니다. 오늘 사온 돌나물은 집 텃밭 돌나물보다 맛 차이가 납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봄이 지척이라고 하지만 날씨는 여전히 엄동의 시절입니다. 겨울이면 늘 벌교가 떠오릅니다. 어느 해 겨울, 처갓집이 벌교인 친구를 부러워하며 그곳에서 먹던 꼬막 맛이 아직도 여전히 혀끝에 맴돌고 있습니다. 그 후로 꼬막 애호가가 되었습니다.


밥반찬으로는 작은 꼬막, 즉 참꼬막이나 새꼬막을 먹고 술안주로는 피꼬막을 먹습니다. 피꼬막은 회로도 먹습니다. 피꼬막의 그 붉은 핏빛은 피가 아니라 내장액입니다. 철분, 칼슘, 아미노산이 풍부합니다. 영양성분은 두말할 나위 없지요.


봄 오기 전까지가 꼬막의 철입니다. 이런저런 핑계 삼아 앞으로도 몇 차례 꼬막으로 밥상을, 술상을 보게 될 겁니다. 술은 그저 반주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흉을 봅니다. “그래, 너는 반주가 서너 병이냐?”


토요일 넉넉한 주말의 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길고 긴 겨울밤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어디에선가 봄은 오고 있을 겁니다. 오늘 마트에 들르길 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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