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기행(경기도 ①)-의왕시 포일동 양평신내서울해장국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섭니다. 안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이른 8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안양이란 도시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군을 제대했던 90년대 초, 출가를 포기하고 돈벌이하러 서울로 올라와 처음 정착한 곳이 안양입니다. 연고도 전혀 없던 이곳으로 오게 된 데는 더없이 존경하던,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존경하는 큰 어른이 그곳에 주석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안양 유원지 입구 창문도 없는 벙커 같은 지하방에서 군인정신(?)으로 몇 년을 보냈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짝궁뎅이, 짝 점박이라는 이름을 붙인 고양이 두 마리와 사회 초년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강아지도 키운 적 있는데 녀석은 바람이 나서 집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더군요. 한동안 술 취한 밤이면 녀석을 찾아 밤 골목을 좀비처럼 헤맨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예쁜 동물친구들과 그리고 나름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 사람 친구들과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밤새 토론을 하거나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았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나눴던 얘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개똥철학이었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 개똥철학 때문에 얼마나 심각들 했었는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우습기도 하고 얼굴 화끈거리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밤새 술 마시고 나면 해장하러 가던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석수시장 순댓국집이나 유원지 초입 다슬기해장국집 아니면 인덕원 사거리 지나 서울구치소 옆 양평해장국집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양평해장국집을 찾는 빈도가 높았었지요. 시래기와 식감 있는 콩나물, 잡내를 잘 잡아낸 선지, 그리고 칼칼하며 개운한 국물. 이 정도면 지난밤의 숙취를 풀어내고도 남는 충분한 한 끼였습니다. 그러니 자주 갈 수밖에요.
그 도시를 떠난 지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안양을 내려갈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해장국집에 들를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그곳을 지나가면 꼭 들를 것이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안양에서 약속이 잡힌 날, 난 주저 없이 일정에 그곳 양평해장국집을 포함시킵니다. 전날 적당히 두어 병 소주도 마셔뒀습니다. 그리고 새벽녘에 일어나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빠르게 도착하여 해장국집을 찾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지요. 이곳도 외관상 많이 변하였습니다. 전에는 스레트 지붕 얹은 허름한 1층 집이었는데 넓은 주차장과 2층 높이의 번듯한 신건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아침 7시 되니 가게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주문하니 잠시 후 팔팔 끓는 뚝배기가 나옵니다. 익숙한 모습입니다. 국물을 한수저 떠서 오래전 그 맛과 비교합니다. 역시 그 맛입니다. 새로운 건물로 인해 잠시 낯설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양평해장국은 짐작컨대 동일 브랜드로서는 전주콩나물해장국과 함께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식당이 있을 겁니다. 그마만큼 찾는 사람이 많고 맛이 익숙하다는 반증입니다. 양평해장국의 가장 큰 특징은 국물 맛입니다. 다른 해장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하면서도 칼칼하며 개운한 양평해장국만의 독특한 국물, 거기에 신선한 선지와 내장 부산물 그리고 우거지, 콩나물이 한데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뤄냅니다.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널리 알려진 양평해장국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장국입니다. 해장국 이름 앞에 양평이란 지명이 붙은 이유는 오래전부터 양평지역에서 키우던 한우는 품질 좋기로 소문났었고, 덕분에 우시장 거래가 활발했습니다. 자연스레 이 지역에서는 소에서 나온 선지와 내장 부산물들을 이용해 국을 끓여 먹게 되었는데 그 음식이 오늘날의 양평해장국 시초가 됩니다.
모든 음식점이 그러하고 특히 프랜차이즈 식당의 맛이 그러하듯 동일 상호면 획일화된 맛이 나오기 마련인데, 양평해장국은 다릅니다. 전국적으로 양평해장국집은 많습니다. 하지만 손님을 많이 끄는 곳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사람의 혀끝은 간사하여 자신의 입맛을 맞추냐 못 맞추냐에 따라 호불호가 확연합니다. 양평해장국이 그러합니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비슷하지만 혀끝에 도는 감칠맛은 가게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그래서 외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양평해장국집을 단골로 삼고 집중하여 다닙니다. 나 역시 그러합니다. 내 입맛에 맞아서 즐겨 찾는 양평해장국집은 전국적으로도 몇 군데 불과합니다.
맛을 내기 위해 어떤 식재료를 쓰는지는 그 집주인이 아닌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육수나 해장국에 들어가는 재료나 부산물들만 보더라도 양평해장국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양평해장국의 주재료인 양은 깨끗한 손질은 물론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합니다. 선지 역시 신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으므로 신선도 유지와 그리고 적당히 삶아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국물 맛을 잡기 위해 5~6시간 이상 동안 시간대별로 재료 넣기를 달리하며 육수를 끓여내야 합니다. 이렇듯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정성이 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양평해장국이 '맛있는 이유'입니다.
해장국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뚝딱 비워냈습니다. 이 긴 겨울날 가슴이 훈훈해질 만큼 익숙한 느낌입니다. 아시다시피 혼밥을 먹었는데도 말입니다. 언제 다시 들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근처를 지나갈 기회가 생기면 나는 반드시 이곳에 들러 해장국 한 그릇을 오늘처럼 또 비워낼 것입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맛있는 맛'을 유지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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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전주콩나물해장국이 고유명사가 돼버린 것처럼 양평해장국도 그 이름은 이미 고유명사이다. 물론 기본 양평해장국의 베이스는 유지되겠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잘 하는' 집은 드물다. 의왕시 포일동에 있는 양평 서울 신내 해장국(031.424.9992) 집은 오래전 맛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 그 국물에서 알 수 있다. 기본 양평해장국과 내장탕, 그리고 해내탕등이 주메뉴이다. 다만,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이 아쉽다. 해장국은 본디 대표적 서민음식 이었음을 업주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정확한 행정구역상으로는 안양시가 아닌 의왕시 포일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