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 조광시장-진희식당
아마도 2~3십대에게 고봉밥이란 단어는 낯선 단어일 겁니다. 하지만 6~7십 년대를 살았거나 시골에 고향을 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이며 정겨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고봉밥(高捧-)의 뜻말은 이렇습니다.
그릇 위로 수북하게 높이 담은 밥.
높은 산 봉우리처럼 그릇 위로 수북하게 쌓아 담은 밥을 말합니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봉밥은 소망이자 희망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한 끼 때우기에도 급급하였고, 일은 고되기만 한데 먹을 게 없다 보니 배는 항상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고봉밥은 말 그대로 원 없이 배 불리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소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리밥이든 고두밥이든 고봉으로 담긴 밥상을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해했던 시절, 그런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지금도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고봉밥을 내놓습니다. 먹을게 넘쳐나는 시대에 웬 고봉밥이냐고 하겠지만 당신은 굶어도 자식들 배불리 게 먹이고자 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이 고봉밥 한 그릇에 담겨 있음을 안다면 눈물겨울 일입니다.
이러한 고봉밥을 내놓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영등포에는 청과시장으로 널리 알려진 조광시장이 있습니다. 과일가게가 즐비한 시장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간판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허름한 식당이 있습니다. 출입문에 진희 식당이라고 붙어있는 낡은 시트지 글씨가 그나마 이곳이 식당임을 알려줍니다.
이 집에는 메뉴가 따로 없습니다. 인원에 따라 뚝배기 크기만 다를 뿐 무와 갈치가 듬뿍 들어간 얼큰한 갈칫국과 그때그때 버무려 내놓는 찬과 그리고 고봉밥뿐입니다. 할머니가 주방을 맞고 할아버지는 지금도 여전히 쟁반을 나르고 배달을 합니다.
진희 식당에는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갈칫국과 손맛 들어간 찬들과 수북이 담은 고봉밥, 그리고 새벽 3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문믈 닫는 영업시간입니다.
조광시장은 과일 도매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전국 산지에서 과일이 도착하면 상인들은 이른 새벽에 나와 가게를 열고 영업을 시작합니다. 할머니는 상인들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국을 끓이고 밥을 짓습니다. 짐작하였겠지만 뜬눈으로 이른 새벽에 나와 일을 하는 이들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새벽에 문을 열고 모든 음식을 정성스레 직접 조리하여 내놓습니다.
이렇듯 진희 식당의 고봉밥에는 새벽부터 힘들게 일하는 상인이나 짐꾼들에게 배불리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집밥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이곳을 찾곤 합니다. 그렇게 드나든 지 벌써 십수 년이 되었습니다. 흐르는 세월에 장사 없듯 할머니 허리는 더 굽어지셨고 할아버지는 기력이 떨어진 게 역력한데, 내놓는 손맛은 여전하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쟁반을 나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늘도 정성 가득한 밥 한상을 차려줍니다. 갈칫살 발라 고봉으로 담은 밥 한 그릇 뚝딱 비워내고 구수한 누룽지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가슴 한편이 뭉실할 만큼 든든합니다.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 입맛 까다로운 나를 위해 여러 가지 찬과 국을 끓여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밥상, 오늘 그 밥상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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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식당(02.2677.8269)은 청과시장으로 알려진 영등포 조광시장 내에 있다. 김안과 사거리에서 민주당사 방향으로 100여 미터 올라가다 과일가게를 끼고 우측으로 돌면 바로 보인다. 식당은 오래되었고 그래서 낡고 누추하다. 청결을 따진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결하지 않다. 조리 또한 당일 식재료를 써서 만든다. 이 집에서는 맛있는 밥과 갈칫국뿐만 아니라 먹는 내내 훈훈한 마음도 얻을 수 있으니 집밥이 그립거나 가슴 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