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기행(제주도 ①)-외도 황소 해장국
섬나라 제주에는 지리적 특성상 육지와는 재료가 다른 특별한 해장국들이 있습니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모자반을 넣어 끓여먹는 몸국이 있으며 보말 즉 고둥을 삶아 생미역과 밀가루를 넣어 끓여먹는 보말국이 있는데 이 음식들은 오랫동안 제주민들의 숙취를 달래줘온 대표적 해장음식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 들어서서는 소뼈를 우려내어 그 육수에 소 부속물과 선지 야채 등을 넣어 끓이는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도 인기가 좋습니다. 제주 현지인들은 휴일 아침이면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해장국으로 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즐겨 찾는 곳이 대부분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집들입니다.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은 육지에서 널리 알려진 양평해장국이나 서울 해장국(청진동 해장국)과 엇비슷합니다. 소뼈 등으로 육수 내는 것이나 선지나 소 부산물, 그리고 우거지가 들어가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맛을 내기 위해 추가로 양념이 들어가는 부분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양평해장국은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 기본 육수에 고추씨와 고추기름을 넣어 끓입니다. 청진동 해장국은 야채와 선지를 넣고 된장을 풀어 구수하게 끓여냅니다. 제주식 해장국은 가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양평해장국처럼 콩나물과 우거지 등을 넣고 고춧가루 양념을 함께 넣어 끓이거나 맑게 끓인 후 양념장을 따로 내놓는 곳도 있습니다.
미풍해장국, 은희네 해장국, 모이세 해장국이 제주 소고기 해장국을 대표하는 식당들인데, 이곳들도 집집마다 맛 차이가 납니다. 이는 육수의 차이와 곁들이는 양념장(다진 양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본 육수는 사골이나 소뼈를 쓰지만 거기에 더하여 사태를 넣거나 디포리 등 해산물을 육수에 배합합니다. 양념장 또한 재료를 달리하여 집집마다 각기 개성 있는 양념장을 쓰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상위에 올라올 때는 확연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제주에서 소고기 해장국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소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입니다. 특히 제주 토종 한우인 흑우는 진상품으로 조정에 올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고, 일본의 ‘와규’라는 품종 역시 일제 강점기 때 제주 흑우를 일본으로 강탈해가서 만들어낸 품종입니다. 이렇듯 소 사육을 일찍부터 해왔던 제주에서 소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이 최근에야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소고기는 예로부터 귀하고 값비싼 식재료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소고깃국 먹는 날이 집안에서 가장 큰 잔칫날이다라고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서민들에게 소는 식용의 대상이라기보다 가장 귀중한 재산이었고 농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일꾼과도 같은 가축이었습니다. 그러니 서민들이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겁니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로 귀한 재산으로서, 그리고 농사에 쓰기 위해 소를 길러왔으니 지금처럼 대중적인 식재료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을겁니다. 제주 소고기 해장국도 고기소가 보급되고 소고기를 이용한 식재료가 보편화되면서 제주민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이런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집들은 제주 시내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서 성업 중입니다. 모 신문사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서귀포 어느 작은 해장국집에서 먹었던 소고기 해장국은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듯하다’라고 쓸 만큼 이제 제주 소고기 해장국은 몸국, 보말국과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해장국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제주공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십여분 서쪽으로 가면 외도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도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을 선보이고 있는 가게가 있습니다. 외도 황소 해장국이 바로 그 집인데, 이곳의 특징은 다른 집과의 차별화보다는 제주식 해장국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재료나 비율에 정성을 무척 들이는 곳입니다.
다른 해장국집들보다 늦게 시작한 이 집 사장은 해장국집을 오픈하기 위해 오래된 해장국집에 가서 무보수로 6개월간 허드렛일을 하며 레시피를 배웠다고 합니다.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결합하여 지금의 해장국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고집스럽게 주방에서 직접 조리를 합니다. 맑으면서도 심심하지 않은 육수를 내기 위해 소머리와 양지고기를 적절하게 삶아내어 맛을 조절하고 직접 손질한 부산물들로 해장국과 내장탕을 끓여냅니다. 특히 해장국에 들어가는 선지를 잡내 없이 삶아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고군분투하고 또한 밥 역시 최상급 쌀로 지어 내놓습니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역시 해장국과 내장탕입니다. 다만 해장국은 맑은 국물에 양념장을 따로 주는 방식이 아닌 끓여낼 때 아예 양념장을 넣어 끓이기 때문에 맑은 해장국을 먹고 싶다면 사전에 주문해야 합니다.
모든 재료를 최상급으로만 쓰고 있으니 재료의 가성비를 따지자면 이 집 사장은 분명 장사 수완이 없는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덕분에 이 가게를 찾는 식객들은 좋은 재료로 성의 있게 내놓는 한 끼 식사를 맛볼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겠지요. 이렇듯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제주식 해장국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해장국집들이 제주 전역에 즐비하게 들어 설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측할 수 있지않을까요?
제주는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입니다. 제주를 여행하며 제주만의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입니다. 그중에 한 끼쯤은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을 드셔 보시기를 권합니다. 특히 전날 여행에 취해 과음을 하였다면 이른 새벽 서둘러 일어나 새벽 5~ 6시면 어김없이 문이 열리는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집에 들러 쓰린 속을 풀어내 보세요. 어느 기자가 얘기했듯 술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제주 해장국이 한동안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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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황소해장국(064.712.2607)은 제주시내에서 서쪽으로 벗어난 외도라는 지역에 있는 제주식 소고기 해장국 전문점이다. 육수를 내기 위한 재료부터 마지막 상차림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젊은 옹고집이 운영하는 곳이다. 해장국과 내장탕이 주 메뉴이고 아이들을 위한 서비스 메뉴도 제공하고 있으니 가족 단위로 가더라도 무방하다. 양평해장국이나 청진동 해장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주 여행길에 이 곳에 들러서 여러 해장국의 맛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