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하 곱창에서 옛 추억을 그리다!

서울 전농동 전농 시장-은하 곱창

by 황하

누구에게나 추억이 깃든 음식 한 가지쯤은 있을겁니다. 맛이 뛰어나서였든,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추억 때문이든 한때 즐겨 먹었던 음식, 그러한 음식은 잊었다가도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 곳을 우연히 지나가다가도 불현듯 생각나기도 합니다. 추억이 깃든 음식은 그래서 옛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한 번쯤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전농동 시장을 기웃거립니다. 10여 년 만의 일입니다. 한때 전농동에 머물렀던 나는 서울의 서남쪽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 동네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인연 되었던 사람들과도 서로 연락이 뜸해지며 소식이 끊겨버렸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올 기회가 더더욱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전농동과 전농시장은 내 기억 속에서 10여 년 넘게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불현듯 옛날의 전농 시장과 자주가던 한 식당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한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던 곳인데’. 차를 멈추고 기억 속 골목을 찾아 기웃거려봅니다. 도시개발에 비껴가서 인지 한 블록 너머로는 고층아파트가 숲을 이루는데 다행히 시장 부근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시장 안도 세월이 멈춰진 듯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덕분에 옛 기억 속의 ‘그 집’ 역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식당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내부도 몇 차례 도배한 흔적만 있을 뿐 세월이 무색할 만큼 옛날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문을 하니 전골냄비에 곱창을 푸짐하게 담아 내놓는 것도, 당면과 쑥갓을 과할 정도로 푸짐하게 주는 것도 예전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음식을 같이 즐겨 먹던 사람들이 없다는 것, 그렇다고 연락해서 밥 한 끼 하자할 만큼 관계가 유지되어 온 것도 아니니 이제는 그들을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이렇듯 늘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결국 돌아보면 곁에 남아 있는 오래된 인연은 몇 안됩니다. 그 이유야 어디 한두 가지 때문일까요.





전골냄비에서 묵직하게 돼지곱창이 익어갑니다. 꿋꿋했던 당면도 흐물 해지고 나이 꺾인 내 청춘처럼 쑥갓도 힘이 빠질 때쯤이면 먹어도 좋다는 신호입니다. 돼지곱창은 보통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아먹는 곱창볶음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얼큰한 국물을 베이스로 하여 전골로 내놓습니다. 그위에 당면과 쑥갓을 넣어 한소끔 더 끓여서 먹는데, 곱창이나 국물이나 얼큰하면서도 목 넘김이 부드럽습니다. 또한 쑥갓의 상큼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곱창의 유들함과 어우러지니 입안에서 환상의 조합이 이뤄집니다.


돼지 내장은 손질하기가 여간 까탈스러운 재료가 아닙니다. 또한 내장에서 특유한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잡내로 인해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집 곱창에선 잡내가 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수십 년 한자리에서 가게를 꾸려오며 세월 만큼이나 오래된 단골이 많은 이유일 겁니다.


쑥갓과 육수를 두어 차례 리필하고 들깻가루 넉넉한 소스에 곁들여 먹다 보니 어느새 푸짐했던 한 냄비가 비워졌습니다. 먹는 내내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함께 잊고 있었던 그리운 맛이 살아납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라는 노랫말처럼 세월 참 많이도 흘러 이미 마음속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반주 한잔 간절한 생각을 억누르고 나오는 길, ‘오랜만인데, 나랑 술 한잔 하고 가’ 슬쩍 손목 끄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슬쩍 뒤를 돌아봅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던 야은의 시조가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 일까요?


발걸음은 헛헛해도 잊고 있던 오래전 그 맛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돌아섭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맛을 유지해주고 있었음에, 잊혀졌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해줌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발걸음에는 적당히 따라나설 그 누군가를 물색하여 함께 들러야겠습니다. 그때는 반주도 한잔 곁들여야 겠습니다.


#황준호와떠나는식도락여행 #은하곱창 #은하집 #청량리돼지곱창 #청량리은하곱창 #전농시장 #황준호와떠나는달팽이여행 #애니투어 #느티나무클럽 #달팽이







*은하 곱창(02.2247.0254)은 서울 청량리역 부근 전농동 시장 안에 있다. 깨끗이 손질한 돼지 곱창을 얼큰한 국물에 당면과 쑥갓을 넣어 끓여먹는 곱창전골이 유명하다. 가게에 들어서면 돼지곱창 특유의 향내가 진동하지만 막상 음식에서는 잡내가 나지 않는다. 곱창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한 리필해준다. 이 또한 이 집만의 오래된 방식.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 서넛이 서 먹기에 적당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해정(解酊), 해장국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