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던지는 질문 - 밀리언 달러 베이비 (4)

믿음 없는 자의 기도

by 준헌

프랭키는 매주 미사에 참석한다.

그가 신실한 신자일까? 오히려 반대다.

그는 신부에게 끊임없이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신이 존재하는 게 맞는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왜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매번 신부는 대답하지 못한다.

자리를 피하고, 결국엔 “이제부터는 나오지 마라”는, 목회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로 대화를 끝낸다.

믿음을 지켜야 할 사람조차, 어려운 질문 앞에서는 무너진다.

설교는 있을지 몰라도, 대답은 없다.


프랭키는 신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에게 여전히 기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상처로 되돌아온다.


[교회는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프랭키의 태도는, 믿음 없는 자의 간절한 외침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도가 때로 더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프랭키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은 믿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늘 외면당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신을 향한 분노보다, 체념이 크다.


프랭키의 태도는 현대인들이 신을 대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우리는 모두 한때는 기도했을 것이다.

그 기도가 들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실망했고, 그 실망은 점차 무관심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무관심 속에도,

어딘가엔 아직도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그건,

“신이 나를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신이 아직 존재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모태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선택에 따라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들어서며, 나는 신앙을 의심했고, 도전적인 태도를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교회를 떠났다.


신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치열하게 사는 신도들의 삶의 태도에 대한 지적질,

믿음 자체보다 교회, 목사,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강요-청년층에게는 노동, 중장년층에겐 헌금을 강요하는 문화-가 상당히 불쾌하다.

성경은 사랑을 말하지만, 교회는 구조만 남았다.

(* 추후 위 내용으로 별도 브런치북 발행 예정)


교회가 지친 자들의 안식처가 되지 못한 점에서도 프랭키의 태도에 공감했다.

영화 속 프랭키는 딸과의 관계가 끊어진(일방적으로 절연당한) 상태고, 그 외 가족도 등장하지 않는다.

말은 없지만, 그의 삶 전체에 후회와 고독이 묻어 있다.

그런 그가 매주 교회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앙을 통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를 부정하면서도 결국 성경 속에서 안식을 찾고 싶은 나의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내가 왜 한국 교회에 반감을 갖게 되었는지, 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지, 이 장면에서 다시 한번 느꼈다.


[비난했던 것에 대한 일말의 기대]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랭키가 매기의 안락사를 앞두고 고뇌할 때, 신부는 교리보다도 인간의 중심을 꿰뚫는 조언을 건넨다.

“신앙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신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해라.”

프랭키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꽤나 울림이 있었다.

교회에 실망하고 신앙에 회의하는 나지만, 그 속에서도 진실한 통찰을 가진 사람은 존재한다는 가능성,

그리고 무작정 교회와 종교인을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믿지 않으면서도, 결국은 믿고 싶은 마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청소년기부터 신앙에 대해 의심했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을 버린 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신앙’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 회피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사랑이라는 가치를 믿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신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기를 바란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상황들,

도무지 버틸 수 없는 날들 속에서,

스스로를 위한 기도를 한다.

"제게 힘을 주세요. 이 세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실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신을 믿는다는 건 결국, 인간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누군가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 내가 미워했던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 마음,

그리고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다고 믿는 마음.

그 모든 것이 결국 신앙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믿고 살아가기로 했는가.

기적 같은 장면을 바라기보다는,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선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세상이 부조리해도 마음 한 편의 사랑을 붙들기로 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마다,

신이 주시는 힘이 있기를 바라면서.


신앙은, 교리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용기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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