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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혁 Jul 23. 2019

문자를 늘이다. 매력을 늘리다.

Stretched Typography에 대한 단상

AIA Heritage Ball 2015 ⒸPentagram

*타이포(typo)는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의 줄임말이 아닌 ‘철자 오류’를 의미합니다. 이에 기존 제목인 ‘타이포를 늘이다. 매력을 늘리다.’를 ‘문자를 늘이다. 매력을 늘리다.’로 정정합니다. 알려주신 이상인님 고맙습니다 :)




너, 요즘 자주 보인다?

점/선/면의 화려한 그림을 보는 것도 좋지만, 문자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사례들이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비전공자의 무지에서 나온 감상으로, 왠지 그림보다 문자가 더 쉽고 익숙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착각도 거기에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것도 썼더랬다.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달 사이에 문자를 길게 늘이는 디자인이 유독 눈에 띈다. 트랜드인가 싶어서 찾아보았더니, Stretched Typography라고 하는 이런 디자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되었다고 한다. 언뜻보면 장난 같기도 하고, 계속 보다보면 또 어려운 것 같기도 한, 이런 시도는 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낯설게 하기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말했던 ‘낯설게 하기’란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하는 기법으로 문화예술 전반에 쓰인다.


Stretched Typography도 일종의 낯설게 하기로 이해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던 획의 굵기나 길이, 자간과 장평 등에 변화를 주어 의도된 인지부조화를 일으킴으로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딘가 낯설어 보이는 이것의 정체를 좀 더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 한 번 더 들여다 보거나, 조금 더 면밀히 살피게 되는데, 그런 부작용이 오히려 주목도를 높이게 되어 포스터나 팜플렛, 브로셔 등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스펙트럼콘 2019 Joy of Design ⒸDesign Spectrum




틀 혹은 구분선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만들다 보면, 제목과 본문을 나누거나 서로 다른 내용을 구분하는 등의 목적으로 선과 도형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면 자칫 화면 내 요소들의 밀도가 높아져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문자 그 자체를 활용하면 어떨까?


한껏 늘어난 문자는 그 길이만큼 경계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프레임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의도한대로 잘 풀어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심미성과 효율성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Sangster




예쁘거나 재미있거나

이것저것 다 떠나서, 직관적으로 가장 와닿는 이유이기도 하다. 뭔가 있어보이게 변형한 문자는 그 자체로 예쁘고 재미있다.


인쇄 매체가 아닌 디지털의 경우에는 문자의 변형을 모션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극적인 재미를 주기도 하는데, 별다른 꾸밈 없이 문자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인터랙션디자인을 고민하면서 늘 ‘쫀득한’ 사용성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모션들이야말로 그 쫀득함의 끝에 있는 것 같다.


Design in Motion Festival Ⓒdemofestival


Eyebeam; Charting a bold vision for the future ⒸMother Design




브랜딩

‘늘이기’를 통해 브랜딩을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 플러스엑스에서 진행한 에이노멀의 리브랜딩에서는 앞선 사례들과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늘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주력 상품인 향수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 향이 퍼져나가는 듯한 그래픽 패턴을 전반에 배치했다. 페인트붓으로 그은듯한 색상의 연장은 타이포그래피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Stretch Typography의 또다른 변주를 보여준다.


ANORMAL Brand eXperience Design ⒸPlus X




문자와 디자인의 경계

한 때 글쓰는 일을 업으로 고민했을 만큼 말과 글, 언어와 문자에 대한 관심이 큰 편이다. // 하지만 이걸 업으로 삼았다면 지금쯤 상당히 곤궁한 처지였을 것 같다. // 디자인이라는 생경한 필드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관심은 계속 이어져서 문자를 활용한 디자인, 특히 타이포그래피에 대해서 자주 찾아보고 감상하며 즐기고 있다.


문자와 디자인의 경계에서 타이포그래피라는 교집합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최근 들어 주목 받고 있는 이벤트와 상품, 브랜드에서 발견한 타이포그래피의 활용이,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맙다.


문자도 디자인도, 글도 그림도, 좋은 것을 많이 들이다 보면 언젠가 잘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앞으로도 계속 경계인으로서 이쪽과 저쪽을 염탐해 볼 작정이다.



2019년 7월 22일에 발행한 미디엄 원문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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